龍門客棧 (Dragon Gate lnn,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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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門客棧 (Dragon Gate lnn,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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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금전의 용문객잔(龍門客棧 1967)을 보았습니다.

이제서야 본 거죠…

1992년에 서극이 만든 신용문객잔과 비교한다면,

형보다 나은 아우가 없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극의 신용문객잔이 호화배역과 자본을 동원한 블럭버스터 였다고 본다면,

호금전의 용문객잔은 무협영화를 예술영화로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용문객잔은 경극의 요소가 꽤 많이 들어있고,

전체적으로 회화성이 부각된 드라마 입니다.

호금전이라는 영화감독이 그냥 흔히 보는 감독이 아니었던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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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사천성 장강 삼협의 용문협에 있는 객잔을 무대로 했다는데,

서극의 신용문객잔은 돈황 일대의 사막에서 찍었다더군요.

호금전의 객잔4부작중의 하나라던데, 나머지 3가지도 구해서 보고 싶어졌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서소지가 객잔에 들어와서 주문하는 음식이 번역에는 그냥 ‘국수’라고 되어 있었지만,

중국어로는 ‘우육면을 주시오’라고 말을 하더군요.

실제로 나온 국수도 구석에 향채 이파리가 몇개 들어간 우육면 이었습니다.

홍소우육면 아니고, 그냥 우육면(牛肉麵).

중간에 동창 사람들과 충신무리가 섞여서 식사하면서 먹는 요리는 ‘쇄양육’ 이던데…

중간에 신선로처럼 생긴 그릇에 양고기를 샤브샤브처럼 데쳐서 먹죠.

요새는 중국의 화과집들이 대개 매운 홍탕국물과 백탕국물을 함께 서빙하는데,

옛날식 화과는 저렇게 신선로처럼 생긴 그릇에 백탕으로만 먹었다고 하더라구요.

아마 1967년도에는 매운 마라향과 산초가 듬뿍 든 홍탕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 같은 쇄양육은 일전에 북경 해정구쪽에서 이공성 노사님의 안내로 가서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껏 먹었던 화과중에서 거의 최고의 맛 이었습니다.

쇄양육의 역사는 남북조시대부터라고 하며, 원래 몽골과 동북의 음식인 이것이 북경에 진입한 것은 1천년도 더 됐다고 합니다.

‘위서’에 ‘동찬’이라는 그릇 얘기가 나온다고 하며, 이게 동으로 만든 신선로 모양이라는군요.

한국의 신선로 요리도 어쩌면 몽골이나 만주에서 오래전에 들어온 것 일 가능성이 있겠지요.

용문객잔의 무대는 사천성인데, 사천 화과가 나오지 않고 왜 북방요리가 나오는지는 잘 모르겠고…

영화에서 나오는 칼 들 중에서 두가지는 중국 중원의 검이 아니고,

서양식 제식에 의한 검 이더군요.

호금전감독이 왜 고증을 무시하고 저런 칼을 내보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긴 제가 어렸을때 한국 TV에서 신라시대를 무대로 한 사극을 방영하면서,

신라화랑이 유럽 롱쏘드를 들고 나와서 기겁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만…

뭐… 60년에는 그럴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할 뿐 입니다. 60년대였으니까.

예전에 이안감독이 와호장룡을 찍었었을때도 느낀건데,

무협의 정서라는건 단기간에 습득할 수 있는것이 아니라는걸

호금전의 용문객잔을 보면서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안감독도 엄청난 무협 오타쿠였었거든요.

와호장룡에 나온 무기들을 자신이 직접 고증해서 제작했을 정도로.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훌륭한 무협영화가 나오지 못하는 겝니다.

비천무, 무사, 무영검, 싸울아비, 단적비연수, 아라한장풍대작전, 거칠마루 따위가 다 망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감독중에 무협 오타쿠가 없었으니까…

멜로하다가, 스릴러, 코미디 하다가, 무협이 대세라고 하면 너도 나도 뛰어들었으니까 망한거죠.

김혜린 원작의 비천무가 무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마 영화제작자들은 비천무가 왜 무협이 아닌가를 잘 모를껄요.

비천무는 무협의 탈을 쓴 멜로 로맨스였죠.

요새 TV에서 ‘예능감’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입니다.

표현할때 이 사람은 엄청난 예능감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데,

무협도 무협감이 있습니다.

무협감각 없는 감독은 무협영화를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좌우지간에,

호금전의 용문객잔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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