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상무예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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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술연맹이 일년에 한두번씩 소식지를 낸다.올해도 얼마전에 상반기 호가 나왔다.거기에 내가 쓴 컬럼도 한꼭지 실려있다.그런데 그 컬럼때문에 여기저기서 전화가 온다.문제가 된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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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기사를 보고서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를것이다.이 기사는 <한국의 전통무예 진흥에 대한 논평>이라는 제목의 컬럼이다.전통무예 진흥을 위한 몇가지 제언이 실려있다.그런데 위의 사진에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무사의 사진이 문제가 됐다.저 분은 얼마전 중앙대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형국 박사’다.무인으로써 인문분야에서 학업에 매진하여 조선시대 마상무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원래 학부전공은 경영학이었으니, 대학원(사학과)시절에 얼마나 고생하고 노력했을지 짐작이 간다.최박사는 수원의 24반무예쪽에서 오랫동안 시범단과 지도를 해 온 분이다.오래전부터… 적어도 이십년 이상 무예를 했고, 말을 탔고, 활을 쏘아 왔다.사진 문제가 불거진것은 최근 한국의 무술단체 몇군데가 소송중이라는게 문제의 발단이다.某마상무예협회가 다른 마상무예 단체들을 고발하고 소송이 진행중이다.아직 1심이 진행중이라고 들었다.이런 상황이니, 고발을 했던 협회측에서 나에게 연락을 해 온 것이었다.질문의 내용은 저 사진이 왜 들어갔냐는 것이다.나는 저 사진을 제공한 적이 없고, 최형국 박사가 말타고 연무하는 장면을 실제로 육안으로 본 적이 없다.당연히 사진을 찍었을리 만무하다.아마도 편집자쪽에서 사진을 구하다보니, 이리 저리 섞여서 삽입된 모양이었다.사진 한장 들어갔다고 나한테 전화를 해서 귀찮게 굴다니,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향후 추이를 지켜보겠지만, 그냥 시정 잡배 소인배가 될 것인가, 세계적인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 될 것인가는상황을 대처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톨레랑스의 크기가 인격의 크기다.김연아가 평소 대인배라며 추앙받더니만,연세대 교수 고발하는 바람에 개싸가지로 전락한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길 바란다.당시 김연아가 연대교수를 직접 만나서 서로 대화하며 풀었더라면,김연아는 지금도 대인배 소리 들으며 주가 올렸을 것이고, 연대교수는 바보찌질이로 전락해 버렸을 것이었다.마상무예는 한국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정말 괜찮은 문화상품이고 한류상품이다.위의 컬럼에도 써 놨지만,태권도 이후 최고의 문화상품 일 지도 모르겠다.마상무예는 특정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한민족 모두의 것 이라고 생각한다.따라서 공동재산이자 공공재 인 문화를 특정인의 소유로 만들겠다는 것에는 반대하며,그런 시도를 하는 집단이나 개인은 나와 궁합이 맞지 않음을 미리 알려드린다.다만 특정인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 발전시켰다는 것은 언제든지 인정하고 존경해 드릴 수 있는 부분이다.다만 그렇다…세종대왕이 한글 창제 해 놓고, 우리한테 특허와 저작권료 받아 드신거 아니잖는가?그러나 세종대왕이 한글 만드셨다는거, 우리는 지금도 잊지 않고 살고 있으며,광화문에 동상도 세우고, 한글날까지 제정해서 존경을 바치고 있지 않나.무엇이 武人 다운 것인가,무엇이 大人 다운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시기를 기원해 본다.말 나온김에 최형국 박사의 박사논문을 소개한다.

<조선후기 기병의 마상무예 연구>

이 논문은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2011년 8월에 나왔다.자세한 내용은 조만간 책으로 출판된다 하니, 책 사서 보시길 바라고,기사는 여기를 눌러보면 나온다.

[사람]’문무겸전’ 무예24기 무사 최형국 박사 : ‘조선후기 기병의 마상무예 연구’로 올 8월 박사학위 취득

내가 세상을 조금 살아보니,내가 생각하고 뭔가 하려 할 때, 비슷한 시기에 어디선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항상 있었다.실제로 인류역사를 봐도 그랬는데,뉴턴이 미적분을 만들었을때, 동시대에 미적분을 연구하여 풀어낸 사람이 있었고,다윈이 진화론을 연구할 때, 다윈보다 진화론을 먼저 발표한 월레스라는 학자도 있었다.다윈은 이론의 골격은 이미 1837년에 완성했으나 다윈은 20여 년간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식물학자인 월레스(1823-1913)가 말레이에서 보내온 <변종이 원형에서 무한히 멀어지는 경향에 대하여>라는 글을 읽고, 그 내용이 자신의 주장과 대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서둘러 <종의 기원>을 발간했다고 한다.후커의 중재로 다윈과 월레스는 공동명의의 논문을 발표했으나, 다윈은 다음 해 서둘러 <종의 기원>을 발표한 것이다.대부분의 혁명적 연구나 이론은 동시대에 한명에게서 나오지 않았다.대부분 불과 몇달의 차이로 인해, 선구자와 후발주자로 갈린다.세상이란 그런것이다.나 만이 유일한 진리이거나, 나 만이 이 분야에서 유일해야 한다는 그런 것은 없다.역사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 않나.그러니까 나를 자꾸 귀찮게 하지 마시기 바란다.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니까, 계속 이렇게 살도록 해주시면 좋겠다.이것이 이 포스팅의 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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