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에 숨겨진 한국 스포츠의 성지, ‘한국체육관’의 역사와 현재
서울의 중심, 을지로의 번잡함 속에 한때 대한민국 스포츠의 심장과도 같았던 공간이 있었다. ‘한국체육관’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낡은 건물은 단순한 운동 시설을 넘어,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려는 국가의 의지와 세계를 향해 도전했던 청년들의 열정이 응축된 역사적인 장소였다.
중구 초동, 우물에서 일본 사찰, 그리고 한국체육관으로
건물이 자리했던 중구 초동은 본래 ‘초정(椒井)’이라는 이름의 우물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후추처럼 맵싸한 물맛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돌아 많은 이들이 찾던 곳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하수 시설 공사로 지하수원이 말라버리자 우물은 자취를 감췄다.
그 터에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기증한 불상을 모신 ‘약초관음사’라는 사찰이 들어섰다. 이 사찰은 일본 쿄토의 니시혼간지(서본원사) 경성지원으로 시작되었으며, 해방 이후까지 납골당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바로 이 건물이 훗날 한국 스포츠의 성지가 되는 한국체육관의 시작이었다. 약 150m 떨어진 곳에는 충무로라는 명칭의 유래가 된 이순신 장군의 생가터도 있었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메카, 한국체육관
1960~70년대, 태릉선수촌이 건립되기 전까지 한국체육관은 사실상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장이자 대한민국 스포츠의 종합적인 산실 역할을 했다. 이곳은 특정 종목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스포츠의 역사가 시작되고 꽃을 피운 ‘스포츠의 메카’였다.
복싱: 가장 대표적인 종목은 단연 복싱이었다. 김현치 관장의 지도 아래 수많은 챔피언이 탄생하며 한국체육관은 ‘복싱의 성지’로 불렸다.
태권도: 전쟁으로 흩어졌던 조선연무관의 후예들이 이곳에 임시로 둥지를 틀며 현대 태권도의 중요한 역사를 썼다. 이는 훗날 태권도 9대관 중 하나인 지도관과 한무관이 탄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지도관은 후일 국기원 건설의 주축이 되었다.
합기도: 합기도의 대부로 불리는 지한재 총재가 20대 시절 서울에 상경하여 이곳에 터를 잡고 본격적으로 합기도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유도, 역도, 펜싱 등: 이 외에도 유도, 역도, 펜싱 등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이 한국체육관에서 훈련하며 국가대표의 꿈을 키웠다. 변변한 훈련 시설이 없던 시절, 이곳은 여러 종목의 선수들이 한데 모여 땀 흘리고 기술을 교류하는 종합 훈련장의 역할을 수행했다.
중국무술: 해방 이후 서울에서 중국무술이 보급된 장소이기도 했다. 합기도와 중국무술은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나눠 교습되었고, 소림권 이덕강 노사가 이곳에서 지도를 했었다.
이처럼 한국체육관은 전쟁 후 척박했던 환경 속에서 다양한 스포츠가 뿌리내리고 성장할 수 있었던 비옥한 토양이었으며, 대한민국이 스포츠 강국으로 나아가는 초석을 다진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한국체육관이 배출한 전설의 스포츠인들
한국체육관의 명성은 이곳에서 땀 흘린 선수들의 빛나는 업적으로 완성되었다. 특히 복싱계의 전설들은 가난과 역경 속에서 국민들에게 큰 희망과 자긍심을 안겨주었다.
김기수: 한국 프로복싱 역사상 최초의 세계 챔피언이다. 1966년 주니어미들급 타이틀을 획득한 그의 승리는 국민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홍수환: ‘4전 5기’의 신화로 유명한 WBA 밴텀급 챔피언이다. 197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타이틀전에서 네 번이나 다운되고도 다섯 번째에 일어나 KO승을 거둔 그의 투혼은 ‘하면 된다’는 시대정신과 맞물려 한국 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만들었다.
염동균: 홍수환에 이어 WBC 슈퍼밴텀급 챔피언에 오른 인물로, 한국체육관의 황금기를 이끈 또 다른 주역이었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복서와 타 종목 선수들이 한국체육관에서 꿈을 키우며 대한민국 스포츠의 역사를 만들어나갔다. 그들은 단순한 운동선수를 넘어, 시대의 희망을 만들어낸 영웅들이었다.
사라진 성지, 그리고 남겨진 과제
1980년대 이후, 최신 시설을 갖춘 체육관들이 등장하고 태릉선수촌이 본격적으로 운영되면서 한국체육관은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다. 안타깝게도 이 역사적인 공간은 대한체육회의 관리 소홀 속에 약 20년간 방치되다 결국 민간에 매각되는 운명을 맞았다. 당시 대한체육회는 매각 대금으로 경기도 하남에 종합 스포츠센터를 짓겠다고 약속했으나, 이 계획은 지켜지지 않았다.
현재 한국체육관이 있던 자리에는 그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한 시대의 영광과 수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 행정 당국의 무관심 속에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현재 한국체육관 부지는 주차장으로 영업하고 있다. 이 부지의 주인은 명보극장의 극장장이었던 신영균씨가 설립한 ‘신영균 문화재단’이다. 조만간 주차장을 철거하고 30층 이상의 주상복합 건물이 이 자리에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많은 체육인들과 역사가들은 한국 근대 체육의 유적으로서 그 가치를 기리고, 최소한의 기념비라도 세워 후세에 그 의미를 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체육관은 단지 낡은 건물이 아니라,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희망을 쏘아 올린 대한민국 스포츠의 정신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다.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곳에 담긴 불굴의 도전 정신과 역사를 기억하고 계승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