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눈이 온다.
운동 마치고 들어오던 7시경에는 그저 하늘이 흐렸는데,
지금은 눈이 펑펑 내린다.
무술을 하면서 많은 스승님들을 거쳤었다.
그중에서도 검법에 있어서 나에게 많은 자산을 남겨주신 분이 박선생님이다.
1992년 11월 2일에 돌아가셔서, 지금 성남공원묘지에서 잠들고 계신다.
박선생님이 칠십평생 한중일 삼국을 헤매서 수십명의 고수들을 찾아 배운후에
말년에 창시한 검법이 바로 설장검법(雪藏劍法)이다.
박선생님은 검법의 이름을 정한 후에,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태백산 천제단, 지리산 노고단에 올라
그때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이 검법의 탄생을 고하셨다고 했다.
박선생님은 선도나 도교쪽과 몹시 친하셨고, 친구가 많으셨는데,
그쪽 친구분들이 몇분 함께 동행해서 이 의식을 함께 하셨었다고 들었다.
박선생님은 검법의 제자를 딱 한명 만들고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게 바로 나다.
당시 검도계에 수많은 고단자들과 훌륭한 선수들을 제쳐놓고,
일개 범부인 나에게 설장검법을 전하신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한국검도계에 나보다 검 잘쓰는 사람이 약 2천명정도는 될거라고 생각한다.
박선생님이 돌아가시기 2년전쯤에 ‘雪藏劍法’이라고 써서 주시길래, 별 생각없이 그 종이를 받았었는데,
그게 그분에게는 검법을 전해주는 나름대로의 의식이었던 모양이었다.
아쉽게도 그 종이는 2000년도 노원구 홍수때, 우리집에 물 들어오면서 젖어 사라졌지만,
힘주어 눌러 쓴 그 글자의 한획한획은 내 골수에 박혀있어, 지금도 없어지지 않는다.
설장검법을 하는자는 적어도 한번은 눈속에서 통과의례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래서 이름이 ‘雪藏劍法’인데, ‘눈속에 감춰진 검’ 이라는 뜻 이다.
‘雪藏劍法’을 배운지 어언 17년이 되었는데도, 눈속에서 하는 통과의례를 나는 하지 않았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도 천둥벼락이 치나보다.
조금전에 아주 가까운곳에 벼락이 떨어졌다.
땅이 진동할정도로 가까운 곳이었다.
저 천둥소리를 들으니,
올해 눈이 많이 온다면, 더 늙기전에 설장검법을 통과해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오늘 내리는 첫눈을 보면서, 성남에 묻혀계신 박선생님과 ‘雪藏劍法’ 이 생각났다.
벼락이 괜히 친게 아닌거 같으다.
눈오는날 웬 벼락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