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을 위해서는 ‘작은’ 태권도로 나아가야 한다.

왜 하늘을 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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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의 동작은 크다.

무술을 수련할 때 ‘크게 연습해서 작게 쓰라’는 금언을 자주 접한다. 연습하고 수련할때는 동작을 크게 크게 하는 것이 좋지만, 어느 단계에 이르면 기술을 작게 쓴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동작을 작게 연습한 사람은 큰 힘을 내기도 어렵고 기술 구사도 답답하게 되기 마련이다.

태권도에서도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품새는 곡예와 같고 화려하지만, 기초 훈련이나 품새에 나오는 스타일로 겨루기를 하지 않는다. 품새 무용론을 외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런 괴리에서 시작한다.

태권도의 품새나 쿵후의 투로는 영화를 촬영하기에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제 격투 경기에서는 적용이 거의 힘들다. 표준 동작과 그 동작의 응용은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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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늘차는 연습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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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태권도 겨루기를 할 때, 하늘을 향해 수직 옆차기를 하는 선수도 없고, 주먹을 허리에 위치하고 정권 지르기를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초보 연습 시절에는 이런 식의 기술을 익힌다. 실전에서 먹히지 않는 기술이라며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이런 과장된 큰 동작의 훈련은 몸의 쓰임을 익힐 때 분명히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아래의 태권도 기본기 영상들을 보면, 손날막기를 할 때도 손이 큰 동작으로 뒤로 갔다가 앞으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태극 품새에서 주로 나오는 이러한 기초 동작들은 품새 시연에는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겠지만, 겨루기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사전 예비 동작이 된다. 품새에서는 앞굽이와 범서기가 나오지만, 겨루기에서 이런 보법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품새 선수와 겨루기 선수는 다르다.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며, 품새 선수가 체조와 같은 움직임이 필요하다면, 겨루기 선수는 간격과 타이밍, 순간적인 파워와 민첩성이 필요하다. 또한 겨루기는 품새보다도 (예비동작 없는) 작은 동작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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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 훈련도 마찬가지다. 초보자는 죽도를 등에 붙을 만큼 크게 돌려서 머리를 치는 훈련을 하지만, 실제 시합에서 이렇게 큰머리를 치는 사람은 없다. 연습은 크게 하되, 사용할 때는 작고 빠르게 쓰는 것이 상식이다. 검도선수가 머리를 칠 때는 정지상태에서 예비 동작 없이 검이 최단 거리를 움직여서 목표에 맞는다. 과장된 예비 동작은 실제 경기에서 절대로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스포츠 죽도 검도의 기술과 실전의 기술은 완전히 같지는 않다. 점수를 따는 것이 목적인 스포츠 격검 시합과 진검 대결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검도의 수련자들은 거합도 혹은 일본 검술을 별도로 배우기도 한다. 실전을 위한 검술에서는 경기용 죽도와는 다른 검의 운용법을 배운다.

중국의 양날 검술도 그렇다. 초보자는 큰 동작으로 자세를 연습하지만, 격검시에는 매우 작은 동작으로 기술을 사용한다. 아래 그림처럼 도검과 괘검을 연습하지만, 실제 초식에서 이렇게 운용되는 법이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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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검술의 기술인 도검

중국 무당파 검술에서도 보여주는 투로와 실전 검술은 다르다. 실전에 사용되는 기술은 마치 펜싱의 에뻬나 사브르와 같은 작고 빠르고 정순한 기술만을 사용하며, 이 기법들을 모아놓은 훈련법과 형식이 별도로 존재한다. 즉 검술 투로는 신체단련과 기본기 습득을 위한 것이 1차 목적이라는 것이다.

무술 발전단계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을 형이상학적 이론체계가 발달한 중국무술에서는 대가(大架)와 소가(小架)로 분류하였다.

(* 대가와 소가는 중국무술의 개념이지만 현재 적절한 대체어가 없어서 그냥 사용하기로 한다.)

현대에 태권도가 성립하고 발전하면서 일어났던 일련의 현상들은 이미 수백 년 전에 태극권 문파에서도 벌어졌다. 태극권에서 대가(大架)가 먼저인가, 소가(小架)가 먼저인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견이 있고 논쟁이 진행 중이지만, 이 두 가지가 무술 형태의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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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권의 소가식 표연

대가(大架)의 특징은 과장될 만큼 큰 동작이라고 할 수 있다. 큰 동작은 실전에서는 비실용적일 수 있겠지만, 큰 동작을 수련하는 과정을 통하지 않고서 작은 동작으로 큰 힘을 내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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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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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장흥

 

대가(大架)는 진가태극권의 진장흥이 편성한 것으로, 자세가 크게 펴지고 난도가 낮아서 나이 든 사람이 연습하기에 적합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가(小架)는 진가태극권의 진유본이 엮은 것으로, 형세가 치밀하고 난이도가 높아서 젊은이가 단련하기에 적합하다고 하여 소가(小架)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근 현대격투기에서는 태극권이 비실전적이라며 폄훼되고 있지만, 태극권은 무술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경지까지 연구되었던 무술이다. 그러나 현재는 표연과 피트니스에 치중되어 격투기로서의 가치는 줄고 있다.

흔히 대가(大架)는 다른 이름으로 노가(老架)라고도 부르므로 오히려 높은 공부라고 생각되고, 소가(小架)는 한 단계 낮은 공부처럼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어느 무술이나 소가식을 단련해야 실제로 작은 동작으로 큰 힘을 낼 수 있고 격투가 가능해 지는 법이다. 대가식이나 노가식보다는 소가식이 더욱 어렵고 실전적인 것이다.

현대격투기에서 사용하는 기술들은 과장된 표준기술들을 경기에 적합한 빠르고 작은 기술들로 응용한 것이다. 종합격투기조차 훈련과정에서 대가식 수련 과정이 없이 소가식으로 가지는 않는다. MMA 훈련시에도 초보자는 큰 동작으로 할 수밖에 없다. 큰 동작으로 샌드백을 쳐 보지 않은 사람은, 근접거리에서 작은 펀치로 큰 충격을 낼 수는 없는 법이다.

이렇듯 모든 무술훈련은 대가에서 시작하여 소가로 간다. 그런데 소가식 훈련방법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것이 현재 태권도의 문제점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태권도 품새는 대가식이며, 소가식이 전혀 아니다. 그래서 품새 수련을 통해 익힌 것을 겨루기에 쓸 수 없으며, 품새만 수련한 선수는 겨루기를 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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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새에 대해 비실전적이라며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범들은 자신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품새나 기술을 개발하기도 하지만, 그 모든 활동은 결국 대가식과 소가식의 구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태권도 품새를 ‘대가식’으로 분류하고, 이제 ‘소가식’기술을 만들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오래전에 태권도가 대가식이어서 소가식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소가식 태권도를 개발한 그룹이 있었다. 오도관과 ITF의 창시자 최홍희 총재의 제자들 중에서 이런 사람들이 등장했는데, 이 그룹 중 하나가 문무빈 태권도이다. 문무빈 태권도는 대한태권도협회와 국기원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비주류로써 제도권 밖에 위치하고 있다.

태권도 소가식의 초기 선구자들은 후일 프로태권도, 천무극, 빈태권도로 분파되었으며, 이제는 각자 독립적인 길을 걷고 있다.

문무빈 태권도가 제도권밖에 위치하는 이유는, 기존 태권도계에서 소가식 태권도의 개념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도 없었던 이유가 가장 컸고, 이질감에서 오는 배타성이 한몫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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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형

오키나와 카라테의 카타는 카타마다 각각 고유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중국무술의 투로도 투로의 목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 투로를 익히면 어떤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다. 하체를 단련하여 순발력을 키우는 것이 주목적이라던가, 근접전에서 팔꿈치사용을 익히는 것이라던가, 무기와 대적하는 법이라던가 하는 고유한 목적들이 있다. 예를 들어 카라테의 철기 카타는 하체단련이 주목적이고, 공상군은 곤이나 봉을 든 상대에 대한 파해법이 들어있다. 팔괘장의 정팔장은 공력단련이 주목적이고 64식 연환장을 통해서는 2인 실전기법을 체득한다.

그런데 태권도 품새는 목적과 목표가 명확하지 않다. 난이도 조절도 잘못되어 있고, 이 품새 수련시에 무엇을 얻을 것인가 하는 목적도 명확하지 않다. 그저 품새를 많이 만들어 백화점식 진열을 해 놓았을 뿐이다.

따라서 현재 태권도의 품새는 모두 다 대가식임이 분명하다. 신법, 보법, 순발력, 민첩성 등 신체단련이 목적이다. 실전을 위한 소가식이 아니다. 품새훈련을 통해 신체는 발달하지만, 실전성과 겨루기 능력이 향상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소가식 태권도에 대한 개념 정립과 개발이 필요하다. 품새훈련을 통해서 겨루기가 가능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천무극, 빈태권도 등에서 수십 년간 해온 소가식 태권도에 대한 지식을 태권도가 흡수하고 포용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태권도에 손기술 실제 용법이 없다며 고민할 것이 아니라, 소가식 태권도에서 어떻게 손기술을 쓰고 있는가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소룡을 유명하게 만든 대표적인 시범기술이었던 원인치펀치는 ‘소가’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극단적인 신체의 단련을 통해 작은 동작으로 큰 동작 못지 않은 위력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중요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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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의 원인치펀치 시범. 소가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기술이다.

최근 ‘실전태권도’를 표방하는 소장 태권도 사범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들의 주장과 결과물은 소가식 태권도에서 오래전에 이룩한 것들이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대가식과 소가식에 대한 구분 기준과 개념을 이해한다면 모두 해결 가능해진다.

대가식, 소가식 이라는 용어는 중국에서 출현한 무술용어이다. 따라서 태권도는 한국식 분류용어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소가식 실전 품새를 만든다면 기존의 품새와 차별화하여 ‘실전형 품새’ 라던가 ‘실용 품새’라는 식으로 명명해 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소가식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현재 태권도가 가진 많은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풀릴 수 있다. 소가식 태권도는 이런 문제점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고, 이미 수십 년간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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