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 팔괘장을 수련한 어느 老 철학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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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 팔괘장을 수련한 어느 老 철학자 이야기

글/ 이의진 ((前 해양수산부, 인천광역시 서기관 근무)
네이버 블로그 : 노을에 기대어 / https://blog.naver.com/bag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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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순과 노수전(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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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순 교수의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 무엇이 문제인가』

박정순 교수와의 만남

나는 연세대학교에서 중국무술 팔괘장을 가르치는 교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분이 바로 老 철학자 박정순 교수님이셨고, 처음 만난 자리는 인천 차이나타운의 대창반점 2층이었다.

이미 인터넷으로 그의 학문적 이력을 접하고 무한히 궁금해하던 차, 직접 만나 뵈었을 때의 인상은 실로 놀라웠다. 박 교수님은 첫인상부터 비범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제외하면, 깨끗하고 준수한 용모, 그리고 생기 넘치는 눈빛에서 세속을 초탈한 철학자이자 무림 고수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말투와 분위기에서는 오히려 친근함과 평범함이 배어 나왔다. 이러한 이중성—준수하면서도 편안하고, 학문적이면서도 무인의 풍모—이야말로 박 교수님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학자로서 박 교수님의 이력은 경탄할 만하다. 저서 6권, 40여 편의 논문, 대한민국 학술원우수학술도서 2권, 세종도서 학술부문 우수도서 2권이 그것이다.

대표 저서로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 무엇이 문제인가?(2016), 현대윤리학의 기원과 동향 (2021) 등이 있으며 한국윤리학회 회장과 다산기념 철학강좌2) 위원장을 역임하며 재임 시 마이클 월저(Michael Walzer),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피터 싱어(PeterSinger) 등 세계 석학들을 한국에 초빙하여 강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런 학문적 업적을 이루신 분이 동시에 문(文)과 무(武) 두 길을 걸어왔다니 참으로 무한한 존경심을 가지면서 경외감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 윤리학계의 거두를 만난다는 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그저 부끄럽기 한량없지만 성실하게 면담하고자 결심하였다.

박 교수님은 인터넷에 있는 자료들을 스크랩(scrap)3)하여 가지고 와서 보여주면서 인사를 나눴다. 교수님은 자신을 영유 도곡무인(永遊 道谷武人)이라 칭하며, 화교 노수전과 그의 한국 인 제자인 전대성에게 팔괘장을 배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직접 화교 노수전과 그분의 한국인 첫 번째 제자인 전대성에게 운동하였으니 인천 팔괘장에 대한 신뢰성 있는 정보는 이 내용이 한국 최초이다.

인천 노수전 팔괘장 제자 중에 자칭 타칭 고수들도 많이 만나 보았고 타류 무술인들도 많이 보았지만, 박 교수님처럼 무술계에서는 드물게 명문대 출신에 해외 유학파 엘리트이다.

그는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쳤고, 미국 에모리대학교(Emory University)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9년 8월 정년 퇴임할 때 까지 이후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현대 영미 윤리학과 정치철학 분야에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나는 박 교수님을 인천 노수전 팔괘장 최고의 브레인(brain)으로 꼽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중공의 핵 실험과 무술과의 운명적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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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중공 핵실험 반대 국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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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중공 핵실험 반대 국민 사진

박교수님의 무술 팔괘장을 처음 접한 계기는 중공의 핵실험 반대 궐기대회였다고 한다. 중국은 1964년 10월 16일 오후 3시, 신장 위구르 사막에서 첫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며,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에 이어 핵무기를 실험한 다섯 번째 국가가 되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중국의 핵실험에 대한 반발이 일었고, 전국 곳곳에서 반대 궐기 대회가 열렸다. 특히 인천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숭의동 공설운동장에서 규탄 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는 화교들도 참석해 중공의 핵실험을 반대하며, 숭의동에서 차이나타운까지 행진을 이어갔다. 반대 궐기 대회에 인천 창영초등학교와 신흥초등학교 악단(band)이 참석하였고 당시 창영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박 교수님은 밴드부 드러머로 참여하였다.

박정순 교수는 그 중공의 핵실험으로 인하여 중국무술 팔괘장(八卦掌)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노수전 팔괘장 수련하던 당시의 상황에 대한 회고와 쿵후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해 주셨다. (다음은 박정순 교수의 회고이다.)

나는 밴드부로 참석하여 반대 궐기 대회 시내 행진 후 차이나타운에 위치해 있는 화교 학교강당으로 들어가서 처음으로 중국요리의 진수를 맛보았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만 먹다가 만한전석(滿漢全席)4)을 보니 눈이 휘둥그레졌고, 한 점 맛보니 천상의 요리 같았다.

그날 강당입구 테이블에서 검과 다른 무기들을 전시하였고 중국무술 태극권(太極拳), 당랑권(螳螂拳), 팔괘장(八卦掌) 등 순서로 시연을 처음 보았는데 그 중 팔괘장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 당시 사회자가 무술을 설명하는 동안,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나는 속으로 ‘쿵후는 정말 멋지다. 나중에 중학교에 가면 꼭 배워야지’라고 다짐했다.

지금 회상하면 그때 시범 보였던 분들이 필서익5), 강경방6), 임풍장7) 등 화교 무술가들이었고 인천 팔괘장의 시조인 노수전8)도 있었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름도, 무술 이름도 몰랐지만 그분들의 존안(尊顔)을 뵙던 것이 너무 기뻤고 그 뒤 4년 뒤 꿈이 이루어졌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니 노수전 선사님은 팔선검과 팔괘장 쭈장9)을 시연하였다. 그날 연회(宴會) 등과 관련해서 아무런 사진이 없고, 있는 것은 화교 행진 대열에 있던 길거리 무술 시범 사진뿐이라 아쉽고 미련이 남는다.

나중에 화교 역사 기록을 찾아보고 싶고 그날의 확실한 기억은 중공 핵무기 반대 집회와 화교 학교에서의 무술 시범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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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핵실험 반대 집회 행사 때 화교 무술 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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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핵실험 반대 집회 행사 때 화교 무술 시범

그리고, 1964년 중공 핵실험 화교 반대 데모 집회에서 노수전 선사님과 팔괘장 시연을 본 이후 5년 만에 다시 노수전 선사님을 뵙게 되었으니 어린 나이지만 감회가 깊었다.

내 무술 이력의 시작은 1969년 8월 중학교 3학년 때 노수전 선사님의 인천 문화극장 앞 팔괘장 도장에 입관하여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고 나는 어린 나이에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도장 입관 이후 노수전 선사님, 유순화10) 선사님, 노수덕11) 회장님, 박복남12) 관장님, 한의사 강영재(姜英才), 강학문(姜學文), 유창인(劉昌仁) 화교 제자 분들의 모습이 보였고 이름들은 나중에 알았다.

노수전 선사님은 뚜장13)과 주장을 가르치셨고 기마, 등산식 등 기본 보형과 압퇴, 보법은 노수전의 큰 제자인 유순화가 가르쳤다.

특히 콘크리트 벽에 대못을 박아 압퇴를 위한 가죽 띠를 걸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기마 등산식 등 기본 보형은 참장공 위주로 했다. 나는 1969년 8월 중학교 3학년 때 입관했는데, 어느 정도의 기간 수련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리고 나의 수련 기간만이 아니라 도장의 존속 여부도 정확히 모르고 같은 수강생 중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강국봉이 있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박복남 관장님 제자가 된 분이다. 

1967년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가 문화극장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고, 1969년 <돌아온 외팔이>도 역시 문화극장에서 상영되어 대히트 하였다. 2편의 영화들과 영화의 주인공 왕우14)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나는 두 편의 영화 상영 때 중1, 중3이어서 영화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봤고 이 영화들이 중국무술 쿵푸를 배워야겠다는 각오를 하였다.

그래서 나는 중국무술을 꼭 배워야겠다고 다짐했고 그 시기에 인천 문화극장15) 앞에 노수전 노사의 쿵푸도장이 개관 하자마자 등록 입관했다. 나는 당시 송림동이 집이라 창영초등학교에서 바로 집으로 가야 했지만 배다리 헌책방 거리16)에 가서 철학책, 당시 유행했던 실존주의 책, 그리고 각종 무술책과 중국무술 책들, 1961년 창간한 블랙벨트(Black Belt Magazine)을 보느라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집에 갈 때는 문화극장 앞을 통해서 갔으니 그 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다. 노수전 선사님 도장은 문화극장에서 대각선 방향에 있고 길의 오른쪽에 있었다.

길은 좁은 골목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야 도장을 볼 수 있었고 체육관은 큰 면적이었고 1층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만, 짧은 수련 기간이 지금도 아쉽기만 하다. 도장 길 입구에 개관 입간판이 있었다. 요새같이 핸드폰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도장이 없어졌는데 노수전의 제자인 유순화 관장님의 아들이 운영하는 차이나운내 대창반점 유소붕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개관 후 1년 정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튼 중3, 15살 어린 시절에 노수전 선사님에게 6개월 동안 팔괘장 기초를 착실하게 배웠다는 것은 나의 무술 수련에 있어서 커다란 자산이 되었다. 노수전 체육관에서 나의 수련 기간은 6개월 정도 되었고 그 기간 동안 압퇴, 참장공, 기본보형, 척퇴, 팔괘척퇴, 보법, 뚜장, 쭈장, 개로권, 발차기 등 팔괘장의 기초 사항을 충실히 교습받았다.

특히, 노수전 선사님 지도하에 배울 때 비전을 이야기 하나 하겠다. 반소퇴(盤掃腿)라고 해서오른발을 돌릴 때 오른손 딛고, 왼발 왼손 드는 것이다.

내가 배울 때는 차호테이라고 했다. 발은 호미처럼 해서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것과 연관되어 있어 반소퇴, 연속 전후 소탕퇴와 삭퇴를 연계해서 수련했다.

반소퇴와 전(前) 소당퇴는 바로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나 아무리 빨라도 후(後) 소당퇴는 바로 공격을 못하고 삭퇴와 연계하거나 반소퇴와 전 소탕퇴와 연계해서 공격해야 한다.

노수전 선사님은 전수하면서 서 있는 것은 모두 쓰러뜨린다는 절예(絶藝)라고 극찬하셨다. 나중에, 전대성 관장님 무술대회를 준비할 때 노수전 선사님도 계속 도장에 오셨다. 그리고 나의 전후 소탕퇴를 보시고 칭찬하셨고 공설운동장 시범 목록에 들어갔다.

노 선사님이 오직 나에게만 반소퇴를 알려주고 기둥과 서까래가 서로 합쳐 원으로 돌면서 치니 모두 쓰러진다고 말씀하였다. 나는 그 기술을 주량환주라고 아버님에게 조언받아 이름으로 짓게 되었다.

다음은, 노수전 선사님은 쭈장(주장)시 자세를 자주 바꾸지 말고 팔괘 주장 식만으로 돌아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맨손뿐만 아니라 무기술의 기초로 대나무를 깎아서 칼처럼 만든 칼 돌리기라는 것이 있었다. 맨손만으로 수련하다가 비록 대나무이지만 칼 돌리기를 하니 좋았다. 이 칼 돌리기는 1970년 4월 입관하게 되는 전대성 관장님 도장에도 대나무 칼이 있어 계속해서 연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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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전 쌍검 시연

나중에 이 칼 돌리기는 나에 의하여 나중에 방시전단봉(防矢轉短棒) 이라는 기예로 발전하였다. 노수전 선사님의 쌍검투로를 전해지지 못해 도장에 처음 왔을 때 수련하는 대나무 칼돌리기 발전시켰고 쌍검투로는 딸인 노숙금(盧淑琴) 선생이 전수 받았다.

사진은 박복남 관장님 영어책 1권에 나오는 노수전 선사님 쌍검자세로 이것이 전수되지 않아 내가 방시전단봉을 만들었다.

노수전 체육관 시절은 여기까지 기억이 남아있고 나중에 노수전 선사님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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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팔괘장 시조 노수전 장례식 우측부터 ⓵ 유순화 ⓶ 박복남 ⓷ 노수덕 ⓸ 노수덕 아들 영 ⓹ 전대성 제자 이승기 ⓺ 박복남 제자 서중원 ⓻ 전대성 제자 안철균 ⓼ 조은훈 제자 이일환 ⓽ 노수덕 화교 친구 ⓾ 전대성 제자 안형주 ⑪ 노수덕 화교 친구 ⑫ 연세대 박정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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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순 교수 팔괘장 메모장

노수전 선사님 사안은 이것으로 마감하고 전대성17) 관장님 도장 시절을 말하겠다. 나는 전대성 관장님 문하에서 사사했다. 동문 수학자들은 안철균, 김상호, 신성화, 조은훈 등이다. 이후 노수전 선사 문하에서 사사했고 동문 수학자들은 신성화, 박봉진 이다.

전대성 관장님의 인천 중구 신흥동 체육관에 1970년 초 입관하여 1971년 초 초단, 1971년말 2단을 획득하였고, 당시 우수 제자들 모임인 수제회(首弟會)에 소속되어 팔괘장을 연마하였다. 초단증은 중국무술 팔괘장 연구회 회장 중국무술 총본관 관장 노수전 존함으로 그리고 무술 명은 중국무술 십팔계 팔괘장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관원증은 한국중국무술연맹연구회 회장 노수덕 존함으로 되어 있고 이어서 중국무술관 사범 전대성 존함으로 되어 있다. 세월이 지나 다시 한번 세 분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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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증 (197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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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원증 (1970. 7. 22)

1971년 10월 무렵 인천 숭의동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중국무술십팔계팔괘장 연무대회에 참석하였던 기억이 있다.

전대성 관장님이 기획한 이 연무대회는 1971년 5월 인천 공설운동장에서 시범을 보인 어느차력사(借力師)가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이때 시범 보인 것이 날카로운 정을 한 손으로 잡아 들어 심장에 대면 보조자가 오함마18)로 정을 치는데 몇 번을 쳐도 끄떡도 하지 않자 관객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고 그리고 손을 뒤로 땅에 대고 몸을 활처럼 휘어지게 하여 배위에 큰 벽돌을 놓고 오함마로 쳐도 벽돌은 깨지지만 역시 끄덕도 안하자 관객들이 큰 환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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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남구 숭의동 공설운동장에서 연무대회 시작 전 도열하고 있는 사진 (사진 맨 우측이 전대성 관장님, 그 오른쪽 옆 김상호, 박정순 사진 우측에서 5번째, 7번째는 천성신, 사진 좌측에서 2번째 신성화. 앞줄 왼쪽 여성은 김지수 등으로 기억나는 귀한 사진이다/박정순 증) 강신덕

나중에 국선도 상좌에게 들으니 그분이 바로 국선도를 창시한 청산거사19)였다고 한다. 물론 진위는 모른다. 연무대회 준비하느라 6개월 정도 연습했는데 팔괘연환곤(八卦連環棍)과 12연창(十二連槍)을 합쳐 매우 강공으로 연습했고 연무대회에서는 여러 가지 종목을 시범보였다.

인천 공설운동장에서 전대성 관장님 도장 무술 시연대회 때 김상호 사형과 나는 같이 장법, 刀대槍, 각각 선풍퇴, 전후 연속 소탕퇴 등을 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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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당퇴 (전소퇴·후소퇴) 연속 시범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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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당퇴 (전소퇴·후소퇴) 연속 시범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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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술(掌術) 시범 (박정순과 김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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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槍)과 도(刀) 대련 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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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槍)과 도(刀) 대련 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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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퇴와 옆 공중돌기 텀블링 (박정순 김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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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퇴와 옆 공중돌기 텀블링 (박정순 김상호)

전대성 관장님님의 지도 아래, 나는 더욱 심화된 팔괘장 수련을 하게 되었고, 그 후에는 팔괘장 연무대회에도 참가하는 등의 경험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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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관원들과 찍은 사진(박정순 윗줄 맨 왼쪽, 그 다음 백승철 동급 제자,밑줄 왼쪽에서 세 번째 김상호 사형, 밑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신성화 사형)

시간이 지나면서, 팔괘장과 쿵후는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 지금도 그 길을 걷게 해준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쿵푸 팔괘장을 수련한 어느 老 철학자 이야기
전대성 관장님과 제자들 사진으로 매우 귀한 사진이다. 가운데가 전대성 관장님이고 나는 첫 줄 우측에서 두 번째, 그 다음 우측에서 세 번째 김상호 사형, 김상호 사형 바로 뒷사람은 백승철 연세대 국문과 박사, 첫 줄 좌측에서 3번째는 관번 1번인 신성화 사형.수제회 대표 제자,서 있는 두 줄에서 좌측에서 5번째가 안철균 사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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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전 딸(노숙금)이 운영하는 대려춘 중식당에서 박봉진, 신성화, 박정순,(1972) 박봉진(태권도 4단/박정순 인천고 동기동창)

54713310979 91034c6d8f n대만 하순정 선사와의 만남

2015년에 인천의 안철균 관장과 함께 100세가 된 대만 팔괘장 고수 하순정 노사를 방문했던 일화를 이야기 해주었다. 선사는 그 나이에도 여전히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면서 운기조식(運氣 調息)등을 하 고 氣를 몸에 전달하는 방법을 체험시켜 주어 교수님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다시 박정순 교수의 회고)
그때 운기조식을 하면서 방문자들에게 두 손을 몸에 대어 몸에서 기(氣)가 굼뜰 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나도 어떻게 하면 강력한 뚜장을 쏠 것인지, 보조 운동은 무엇이 좋은지 고심했다. 

뚜장은 벽공장(碧空掌)이니 하늘에 대고 수련하고, 이어서 땅에 엎드려 푸시업과 손뼉치기 3번까지, 철봉과 평행봉, 바벨과 덤벨 등 새로운 기예로 발전시켰다.

나중에는 더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다가 크로커다일 영화(Crocodile,1986)를 보다가 갑자기 떠오른 것이 있었는데 악어공장(鰐魚功掌)이었다. 땅바닥을 장으로 치면서 작용·반작용의 힘을 받아치니 최고의 힘이 솟아 올라오면서 공력이 배가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공력(功力). 내공(內功). 외공(外功). 이지도립식. 배사첩. 금나팔괘장 정공. 전완단련  등 자신만의 독특한 기예 체계를 구축 박 교수님의 무술 철학을 잘 보여준다. 무술 이력은 노수전 선사님과의 1년 수련, 전대성 사범님과의 2년 수련으로 이어졌다가 다시 노수전 선사님의 직제자로서 신성화, 박봉진과 함께 수련 당시 인천시청(현 중구청)앞에 대려춘 중식당 지하와 옥상 그리고, 인천자유공원에서 4년간(1972~1975) 수련 하다가 1976초 군에 입대한 무술이력을 설명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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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4. 13. 미국 애틀란트 에모리대학교 국제문화축제장에서 이지선(二指禪) 시범

(다시 박정순 교수의 회고)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단지 한 시절을 함께 했을 뿐이지만 그 시간의 무게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는 인천 노수전 팔괘장 문파 산하 모든 지파와 억하심정(抑何心情)이 없고 어떤 경로든지 같이 수련했다. 그게 나의 장점이기도 하다.

당시 노수전 선사님 4년 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일화는 “모든 기예들을 극한까지 추구하여 소림 72절예처럼 수련했다”면서 옛날 일을 담담히 이야기 하는 박정순 교수의 회고는 인천 팔괘장의 역사 그 자체이다.

박정순 교수는 단순히 무술가가 아니라 인천 노수전 팔괘장 문파의 산증인이자, 그 체계와 역사를 학문적 성찰과 함께 후대에 전하는 문무겸전(文武兼全)을 추구하는 구도자가 되어 있었다.

박정순 교수의 향후 계획

박정순 교수는 2003년부터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에서 동양무술 팔괘장 교양과목을 개설하여 큰 호평을 받았다. 

그는 그동안 많은 제자들에게 팔괘장을 가르치고, 동양 무술의 진수를 전하면서 장수하는 팔괘장 스승들처럼, 무병장수하며 연세대학교 미래평생교육원에서 팔괘장 과목을 계속 가르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현재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이 길을 걸어가고자 하면서, 노인 건강 운동 과목을 개설하여 각 지역 구청 등에서도 강의 등 노인 건강 무술로서 팔괘장의 가능성을 넓히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박정순 교수님과 SNS 인터뷰 및 대담 녹취 기록 중에는, 나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금나(金羅) 팔괘장 정공”, “와약장공(蛙躍掌功)“, ”악어장공(鰐魚掌功)“ 같은 용어들과 장풍(掌風)에 대한 설명, “소당퇴”20)를 ”주량환주(柱梁換週)“’로 부르거나, 칼 돌리기를 ”방시전단봉(防矢轉短棒)“이라는 기예로 발전시켰다는 내용 등이다.

내가 지식과 식견이 부족하여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그 뜻을 헤아리고자 최대한 충실히 옮겼다. 다만 이로 인해 글의 앞뒤 흐름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독자 여러분의 너른 이해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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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순교수 동양무술 팔괘장 수강하는 유학생들

몇 가지 단상(斷想)

문무를 겸비한 박정순 교수의 회고는 인천 노수전 팔괘장의 역사 그 자체이다. 특히 노수전 과 노수전의 첫 번째 한국인 제자인 전대성 관장 시절의 증언은 더욱 소중하다.

나는 과거 그분의 사진과 전대성이 발급한 단증, SNS 자료 등 유·무형의 관련 자료를 확보하 였다. 박정순 교수께서 대학교 교양과목으로 동양무술 팔괘장을 지도 한 것은 중국의 팔괘장 등과 확연히 구분된다.

오래전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닌 유머가 있었다. “짜장면 같은 한국의 쿵후”라는 말이다. 짜장면과 한국쿵후는 비슷한 점이 많다. 공통으로 중국에는 없지만 한국에서는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리고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것 등이다. 한국화된 짜장면. 한국화된 무술(팔괘장 등) 이것은 인천 팔괘장만이 아니라 과거 한국에 들어온 쿵후의 정체성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짜장면이 나름대로 독특한 풍미와 역사를 가지고 국민에게 사랑받는 것처럼 인천 노수전 팔괘장도 중국에는 없지만 독특한 체계와 뛰어난 기격성을 가지고 존중되어야할 것이다.

인천에서는 뚜장과 기술연습 수천수만 번 하고 체력 단련해서 힘 키우고 많이 대련한다. 절대 신비하거나 환상적이지 않으며, 그저 땀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운동이다. 화교 노수전이 전한 팔괘장은 지금도 화교(華僑) 직계로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노수전에 배운 한국인 제자로 전대성과 박복남 등이 있고 미국과 한국에는 그분들의 제자가 많다.

세월이 흐른 뒤 관문 제자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인천 노수전 팔괘장에 어찌 재인(才人)과 기인(奇人)이 없었겠는가. 관문 제자는 마지막까지 스승 곁을 지킨 사람이라 들었는데, 그분들은 어떤 가르침을 전수받았을까. 스승과 제자의 마지막 주고받음은 어떤 풍경이 었을까.

이제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지금, 문무겸전(文武兼全)의 老 철학자의 모습에서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21)라 했던가!

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과 한(恨) 그리고 학문 세계를 들여다본다.

한국 윤리학계의 권위자 박정순 교수

인천 노수전 팔괘장의 산증인 박정순 교수

나는 아직 박 교수님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 무술과 철학,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지표다. 문(文)과 무(武)의 길을 함께 걸어온그분의 삶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 대한민국학술원 2016년 인문학 우수 학술도서
2) 한국철학회 : 다산기념 철학강좌(Dasan Memorial Lecture of Philosophy)
3) 네이버 블로그 : 노을에 기대어 / https://blog.naver.com/bagua
4) 만주족과 한민족 요리의 정화를 결합하여 만들어 낸 요리로 호사함과 고급스러움이 극치를 이루는 잔치
5) 畢庶益(1899~1972.10.7.) 산동영성(荣成市)동산(東山村)출생 장권,태극권등등 할 줄 아는 중국무술이 많았으며 대구, 군산, 인천에서 화교들에게만 무술을 가르쳤다.
6) 姜庚芳 (1913~1994) 산동성 연태(烟台)출생 태극매화당랑권 학항록의 제자로 부산에서 생활
7) 林品障 (1910~1982) 산동모평현(牟平縣)출생 기춘정(紀春亭)의 당랑권 제자로 춘천과 강릉에서 음식점 경영
8) 盧水田 (1894~1978.8.15) 산동영성현석도시노가촌(山東榮成縣石島鎭盧家村)인천팔괘장의 始祖9) 走圈 : 인천 팔괘장에서는 주권, 주장(走掌) 또는 주장술(走掌術)이라고도 한다.
10) 劉順華(1938.07.01 ~ 2011.11.05.)노수전의 제자로 무당팔괘문 제1관·차이나타운에서 대창반점 운영
11) 盧樹德(1933 ~ 2006.11) 노수전의 아들로 재한중국무술무당팔괘문총회장 역임
12) 朴福男(1942.04.24. ~ 미국 이민) 인천에서 노수전에게 팔괘장 배움
13) 抖掌 : 두장, 뚜장, 투장이라고 하며 손목과 손가락을 세심히 간격을 두고 손바닥은 오목하게. 타격
순간에 장을 뒤집어 한 바퀴 돌려 “흠”이라는 기합을 병행
14) Wang Yu, 王羽 (1943~2022) 홍콩 영화계에서 활약한 대만 출신의 액션배우
15) 문화극장 (1955~2005) : 인천 동구 배다리에 있던 개봉관으로 나중에 피카디리 극장으로 불렸다.
16) 해방 이후 창영서점 등 40곳이 넘는 성황을 이뤘다.
17) 全大成(1945.7.30.~2011.6.27) 노수전의 한국인 첫 번째 제자로 인천·서울·부산 등에서 정무관 운영이후 미국으로 이민
18) sledgehammer
19) 청산선사(1936~84·본명 고경민)
20) 掃蹚腿 : 다리로 쓸어 넘어트리는 기술
21) 논어 옹야 :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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