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난된 조선검이 삼인검은 아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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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된 조선검이 삼인검은 아닐텐데

기사 내용을 좀 믿기 어렵네…

(1) 문화재제자리찾기, 미군 약탈 ‘조선검’ 찾기 나선다

(2) 미군이 반환한 ‘조선검’ 행방 찾았다

이 기사들을 보면, 도난된 조선검은 육사박물관에 있는 삼인검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왕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을 정도의 검 이라면,

삼인검이 아니라 사인검이어야 맞다.

적어도 한자루 이상의 사인검은 조선왕실에 있었어야 한다.

지금부터 약 20여년전에 인사동에 사인검이 잠시 돌아다니다 사라졌다는 첩보도 있는데,

당시에 그 검을 직접 만져보신 분의 증언에 의하면,

보는 순간 무조건 사겠다고 결심하고, 돈을 마련해서 다음날 와 보니 이미 행방이 묘연했다는 것이었다.

사인검을 사려고 하셨던 분은 이 바닥의 최고 전문가 중의 한분이라서,

아마도 물건을 잘못 보셨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육사박물관에 소장한 삼인검은 8-9년전쯤에 내가 실측조사도 해 보고,

학예관 안 볼때, 들고서 실컷 휘둘러 본 터라, 어떤 칼인지 잘 알고 있다.

육사박물관 삼인검은 조선시대 진품은 맞다.

조선시대에 사인검은 한자루가 아니었던 모양으로,

조선왕조실록에는 약 6번 정도 언급된다.

연산군때는

<연산 61권 12년 1월 12일 (임진) 3번째기사 / 사인검 2백 자루를 만들어 들이게 하다> 라는 언급이 있고,

중종때는

<중종 66권, 24년(1529 기축 / 명 가정(嘉靖) 8년) 12월 17일(기묘) 2번째기사 : 헌부에서 사인검의 역사에 대해 정지시킬 것을 건의하다.

헌부가 전 대간의 일을 아뢰고, 또 아뢰기를,

“사인검(四寅劍)을 만들 때는 반드시 미리 산역(山役)을 하고 사장(私匠)을 모아야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개월 간 산역을 하자면 민폐(民弊)가 적지 않을 것은 물론, 사장 1인이 1일씩 역사하는 것이 심한 폐해가 되지는 않는 것이지만 수괄(搜括)하는 폐단이 어찌 작겠습니까? 이런 흉년에는 급한 일도 정파(停罷)해야 하는데 이 같은 급하지 않은 일을 벌여서는 안됩니다. 역사(役事)를 정지시키소서.”

하니, 사인검에 대한 일은 정지하라고 명하고 나머지는 윤허하지 않았다.>

라고 하여, 사인검 역사가 꽤나 힘들었음을 알 수 있다.

삼인검은 숫자가 꽤 많았던 것 같다.

<성종 90권, 9년(1478 무술 / 명 성화(成化) 14년) 3월 11일(계유) 2번째기사>에 보면,

스스로 말하기를, ‘신은 본래 고읍지(古邑之)라고 일컫는 여인을 알지 못하며, 전후(前後)에도 여인을 살해한 일이 없습니다. 집안에 다만 삼인검(三寅劍)과 삼진검(三辰劍)이 각각 한 자루씩 있을 뿐이고, 또 환도(環刀)는 없습니다.’

라고 나오는데, 삼인검과 삼진검의 존재가 언급된다.

<숙종 17권,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1월 13일(무진) 2번째기사>에서는

삼인검을 타조하는데 선혜청의 쌀 등을 호조 병조의 면포를 제급하도록 하다.

임금이 전교하기를,

“삼인검(三寅劍)을 타조(打造)하는 데는 물력이 너무 많이 들어서 내수사(內需司)에서 충당해 주기가 어려우니 선혜청(宣惠廳)의 쌀 30석(石)과 돈 2백 냥(兩) 및 호조·병조의 면포(綿布) 각 2백 필(匹)을 제급(題給)하도록 분부하라.”

하였다. 삼인검이란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에 타조하는 것을 말함인데, 사귀(邪鬼)를 물리칠 수 있다.

라고 언급되고 있다.

아마도 사인검, 삼인검은 한두자루 만든게 아닌 듯 하며,

따라서 인사동 골동품 업계에 진품이 좀 돌아다닌것이 불가능 한 일은 아닌것이다.

미국에서 돌아온 조선검이

조선왕가 박물관에서 소장했던 것 이라면, 그 중에서도 꽤나 괜찮은 칼 이었을것이 분명하고,

육사박물관에서 갖고 있는 삼인검은 분명 아니었을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충무공이 갖고 계셨다는 쌍룡검도

어쩌면 일본도 칼날에 외부 장식만 바꾼 검 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칼 중에 그나마 괜찮은 것은 대부분 일본도 였으니까 말이다.

박물관에 소장한 별운검, 패월도 등등의 칼도 칼날은 일본도 다.

칼자루 분해해서 보면, 검병에 적힌 명문이 일본 장인의 이름이라고…

심지어 별운검 자루속의 나무조각은 일본땅에서 나는 일본산 나무였었다.

박물관 학예사들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알면서도 입을 열지 못하는게 그 바닥 분위기라 어쩔 수 없다.

예전에 사인검 한 자루는 집권한 전두환이 뺏어갔었다고 하니, 지금도 아마 29장군의 자택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 칼을 뺏긴 사람이 전두환이 가져갔다고 말했으니, 아마 맞겠지…

사인검은 재벌이나 정치가들에게 가 있는것이 꽤 있는것 같고,

대부분은 바다 건너 일본의 수집가 손에 있다고 보는게 정확한 판단일 것이다.

(무협의 영향인지) 검에 관해서는 다들 너무 국수주의에 쏠리는 것 같다.

조선칼이 일본칼보다 더 훌륭해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의 검이 일본도보다 품질이 떨어진다는 사실에 너무 기분나빠 할 이유는 없다.

대신 한국의 각궁이 일본활보다 백만배 더 훌륭했으니까…

뭐 한가지만 잘하면 되지, 다 좋아야 한다는 의무는 없지 않나.

임진왜란때 조선의 함선과 대포, 활은 일본보다 확실히 좋았었다.

그러면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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