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룡팔부 (天龍八部)

0
천룡팔부 (天龍八部)

a0004645 4ccfc624849ee

지금 중국에 여행간 친구가 트윗에서 날린 멘션을 보니,
소오강호를 좋아하니 화산에 성지순례가오, 안휘성과 석가장에 와호장룡 성지순례는 다음번에~! 라고 썼다.

생각해보니 나는 천룡팔부 성지순례도 한 셈 이었다.
김용의 천룡팔부는 대리국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대리국은 지금의 운남성을 중심으로, 서부 사천과 귀주성 일대까지 포함되었었다고 한다.
건물외장에 많이 쓰는 대리석(大理石)은 바로 운남 대리국에서 나는 돌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이름으로 대리석을 ‘점창석’이라 부르기도 한다.
점창…. 그렇다. 중국 무협에서 검을 잘 쓰기로 유명한 문파의 이름이다.

대리국의 수도가 있었던 대리시(大理市)의 뒷편 산맥이 바로 점창산이다.

점창산은 약 50km의 산맥이며, 19개의 봉우리와 18개의 계곡,

그 계곡 사이로 흐르는 18개의 강줄기가 있는 아름다운 곳 이다.

18개의 강물은 대리성을 지나 이해호(얼하이호.耳海湖)로 흘러들어간다.

운남성 대리(따리)는 중국에서도 알프스를 느낄 수 있는 몇 안되는 아름다운 지역이다.

중국의 그 중국틱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중국여행을 기피하는데,

운남성은 중국에서도 중국같지 않은 몇개의 지역중에 하나다.

1994년도에 임청하와 공리가 나왔던 천룡팔부는 원작을 심하게 훼손하였기 때문에,

천룡팔부로 쳐 줄 수 없고,

2003년에 유역비 주연의 TV시리즈 천룡팔부가 원작을 살려 제대로 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a0004645 4ccfbe4516b0d
a0004645 4ccfbe52ef7c6

일명 무협의 꽃이라 불린 유역비때문에 더욱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였다.

천룡팔부의 왕어언, 신조협려의 소용녀는 유역비가 아닌 그 누구도 제대로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치 천녀유혼은 왕조현이 아니면 불가능 한 것 처럼 말이다.

천룡팔부의 주인공은 단예다.

그는 대리국의 왕자인데, 소설상의 족보와 실제 역사는 많이 다르다.

대리국은

938년 중국의 윈난[雲南] 지방에서 단사평(段思平)이 세운 나라로서,

22대(代)에 걸쳐 300여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1253년 몽고(蒙古) 쿠빌라이의 침략으로 멸망한다 (938~1253).

대리국이 철없게도 남송의 편을 드는 바람에, 영리한 몽골이 남송을 치기전에 대리부터 쳐 버렸기 때문이다.

———————————————

<대리국의 역사>

중국 남서부에 위치한 윈난에는 오래 전부터 수많은 종족들이 각기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이 지역에는 타이족, 이족[彛族], 먀오족[苗族], 바이족[白族], 나시족[納西族], 누족[怒族] 등 20여 민족들이 분포한다. 당(唐, 618~907) 시대에 이 지역에는 몽수(蒙嶲), 월석(越析), 시랑(施浪), 등섬(邆賧), 낭궁(浪穹), 몽사(蒙舍) 등 6개의 큰 부락(部落)이 나타나 연맹을 형성했는데, 이들을 6조(詔, 部 혹은 長의 의미)라고 불렀다. 그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하여 남조(南詔)라고 불렸던 몽사조(蒙舍詔)는 649년 대몽국(大蒙國)을 세웠고, 738년에는 당(唐)의 지원을 받아 6조(詔)를 통일하여 남조국(南詔國)을 세웠다. 남조국(南詔國)은 751년과 754년 당(唐)의 대규모 침략을 물리쳤고, 9세기에는 베트남, 타이, 미얀마의 일부까지 세력을 넓혔다. 하지만 902년 권신(權臣)이었던 정매사(鄭買嗣)가 반란을 일으켜 대장화국(大長和國)을 세움으로써 멸망하였다.

남조국이 멸망한 뒤 이 지역에서는 정치적 혼란이 일정 기간 지속되었다. 910년 정매사가 죽은 뒤에는 그의 아들인 정인민(鄭仁旻)이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927년에 검천절도사(劍川節都使) 양간정(梁干貞)이 대장화국(大長和國)을 멸망시키고 대천흥국(大天興國)을 세워 청평관(清平官) 조선정(趙善政)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양간정(梁干貞)은 곧바로 조선정(趙善政)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어 대의녕국(大義寧國)를 세웠지만, 937년 통해절도사(通海節都使)였던 단사평이 지방 부족들을 규합하여 그를 몰아냈다. 단사평(段思平)은 938년 남조의 계승을 선언하며 얼하이호[洱海] 유역의 다리[大理]를 도읍으로 하여 대리국을 세웠다.
단사평은 ‘백만(白蠻)’이라고 불리던 부족(部族) 출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백만(白蠻)’은 오늘날의 바이족[白族]이나 타이족과 연관된 것으로 여겨진다. 대리국은 남조보다는 왕권이 강화되었지만, 부족 연합의 성격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해 귀족들의 영향력이 강했다.

그래서 1094년 보정제(保定帝, 재위 1081∼1094) 단정명(段正明)이 양의정(楊義政)에게 살해되고, 양의정(楊義政)을 토벌한 청평관(清平官) 고승태(高昇泰)가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1096년 고승태(高昇泰)가 죽은 뒤 문안제(文安帝, 재위 1096∼1108) 단정순(段正淳)이 왕위에 올라 단씨(段氏) 왕조(王朝)는 지속되었지만 왕권은 더욱 위축되었다.

이 때문에 보정제(保定帝)까지를 전대리국(前大理國), 문안제(文安帝) 이후를 후대리국(後大理國)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대리국은 남조의 정치체계와 행정조직을 그대로 계승하였으며, 그 세력도 남조(南詔)가 가장 강성했을 때와 비슷해 북으로는 쓰촨성[四川省] 서부, 남으로는 베트남 북부, 서로는 인도와 미얀마, 동으로는 구이저우성[貴州省]과 광시성[廣西省]의 일부까지 지배하였다. 토번(吐藩)보다는 송(宋)과 정치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으며 멀리 고려(高麗, 918∼1392)와도 내왕(來往)하였다.

대리국은 남조와 마찬가지로 불교(佛敎)가 무척 발달했는데, 역대 왕들 가운데 9명이 왕위를 선양(禪讓)하고 출가(出家)하여 승려가 되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도 이들이 머물렀다는 충성사[崇聖寺]와 다리삼탑[大理三塔] 등의 유물이 전해진다. 다리삼탑은 남조(南詔) 소성왕(昭成王, 823∼859) 때 건립된 천심탑(千寻塔)과 그 남과 북에 대리국 시대에 42m 높이로 세운 두 개의 팔각전탑(八角塼塔)을 통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대리국은 1253년 몽고(蒙古) 쿠빌라이[忽必烈, 1215~1294]가 남송(南宋)의 배후를 공격하기 위해 쳐들어옴으로써 멸망하였다. 몽고는 진사강[金沙江]을 건너 대리성(大理城)을 공격하여 점령했으며, 대리국을 멸망시키고 이 지역에 운남행성(雲南行省)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단씨(段氏)을 대리총관(大理總管)으로 세습케 하여 이 지역을 원(元, 1271∼1368)의 지배 아래 두었다. 한편 대리국의 멸망 이후 일부 집단은 란창강[瀾滄江]을 따라 인도차이나 반도로 남하하여 타이족과 융합하여 여러 국가들을 건설하기도 하였다.

[출처] 대리국 [大理國 ] | 네이버 백과사전

———————————————

실제 역사는 위와 같은데, 김용의 소설 천룡팔부에서는

단정명의 동생이 단정순이며,

단예는 단정순의 아들이다.

단정순은 여자편력을 일삼다가 마지막 편에서 죽게 되고,

단정순의 형인 황제 단정명이 머리깎고 중이 되어 숭성사로 들어가면서,

조카인 단예에게 황제자리를 양위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실제 역사는

단정명(段正明)이 양의정(楊義政)에게 살해되고, 양의정(楊義政)을 토벌한 청평관(清平官) 고승태(高昇泰)가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1096년 고승태(高昇泰)가 죽은 뒤 문안제(文安帝, 재위 1096∼1108) 단정순(段正淳)이 왕위에 올라 단씨(段氏) 왕조(王朝)는 지속되었다

고 한다.

김용의 천룡팔부는 실제 역사와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위에 잠시 왕위에 오르는 고승태는 소설 천룡팔부에서도 등장한다.

대리국의 시조인 단사평은  백만부족(白蠻部族)출신이라고 하며, 이는 현재의 백족이나 태족과 관계가 있을거란다.

원래 대리국은 백족(白族)과 태족(泰族)의 연합왕국이었고,

몽골이 남하하자 백족과 태족은 그 유명한 인도차이나로 민족대이동을 한다.

백족과 태족의 민족대이동을 게르만족의 대이동에 비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어쨌거나 운남 남쪽의 시솽반나를 거쳐 지금의 라오스땅에 도착한 백족과 태족 유민들은

백만(白蠻)코끼리 왕국을 세우고, 다시 내려가서 지금의 태국북부에서 수코타이 왕국을 세우고,

더 내려가서는 현재의 태국을 이룬다.

그래서 현대 태국어와 운남 남부 시솽반나 부족의 언어는 거의 동일하다.

어떤 태국의 스님이 포교하러 라오스를 거쳐 운남 시솽반나에 왔는데, 언어가 같아서 의사소통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때 내가 동행해봐서 현장목격을 했다.

대리국의 태조인 단사평은 백족계통이 아닐까 추측되는데,

소설 천룡팔부에서 단예의 엄마인 도백봉은 ‘파이족’이라고 한다.

파이족은 바이족(白族)을 말하는 것 같은데, 아마 발음상의 차이 일 것이다.

소설에서는 다른 부족처럼 묘사되지만, 결국 단정순과 도백봉은 같은 부족이라는거지.

소설은 앞뒤가 안 맞는 부분도 많이 보여준다.

예를 들어서 허죽자가 물려받는 표묘봉 영취궁의 위치는 천산인데,

소설에서는 영취궁이 서하국의 수도보다 동편에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서하(西夏)는 탕구트족이 세운 나라로써 1032년에서 1227년까지 중국 북서부의 감숙성(甘肅省), 섬서성(陝西省)에 위치했던 티베트계 탕구트족의 왕조이다.

전성기에는 북으로는 고비 사막, 남으로는 난주, 동으로는 황허, 서로는 옥문에 이르는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탕구트인들은 티베트 종족에 속했으며 국교는 불교였고 중국의 영향으로 문화가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되어 있었으며 한자에서 파생된 문자 서하 문자를 가지고 있었다.

서하의 수도는 지금의 닝샤성 은천(寧夏省 銀川)이었고,

탕구트어라고도 부르는 서하어(西夏語)는 티베트-미얀마어 계통에 속하며,

1036년에 공포된 서하문자(西夏文字)는 한자(漢字)와 유사한 양식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은 이런데,

소설에서는 서하국의 동편에 영취궁이 있다.

천년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천산은 서하국 영토의 서편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서하언어는 한족말과 달라서,

허죽자가 서하국 공주와 몽랑, 몽고라 부르며 연애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대리국 사람, 송나라 사람, 요나라(거란)사람, 서하국 사람이 모두 같은 언어를 쓴다.

뭐 소설이니까…

내공이 깊으면 자동 트랜스레이트가 될 수도…. 있겠지….(?)

재미있는것은 실제 천산에는 표묘봉의 컨셉을 제공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지명이 있긴 하다.

천산대협곡 입구에는 ‘붉은 땅표범’이라고 불리는 작은 봉우리들이 있는데,

한자로는 丹地豹라고 쓴다.

이렇게 생겼다.

a0004645 4ccfc6bc5d233
a0004645 4ccfc6c299fb8
a0004645 4ccfc6c89967c
a0004645 4ccfc6cf82591
a0004645 4ccfc6d501867
이 봉우리들이 표(豹)라고 불리는 작은 봉우리들이다.

이 일대를 丹地豹 라고 부른다.

나는 여길 지나가면서, 표묘봉이 있나하고 찾아봤지만,

<영취궁까지 25km, 이추수는 출입금지. 즐~ > 이라고 씌어진 도로표지판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ㅎㅎ

천룡팔부에서 유명한 씬이 벌어지는 안문관(雁門關)은 운남이 아니라 산서성에 있다.

a0004645 4ccfc856cbb39
a0004645 4ccfc85deccaf
여기도 세계문화유산이라서 요새는 꽤나 말끔하게 정돈해 놓았다.

이 성문 밖에서 소봉의 아부지가 비극을 당하고,

나중에 격전이 벌어지며, 결국 소봉이 부러진 화살로 자결하는 곳이다.

요새 운남성 대리에 가면,

대리 고성(大里古城) 서쪽에 ‘천룡팔부城’을 만들어 놓았다.

영화 찍고 남은 세트장인데, 이걸 좀더 보완해서 관광지를 만든 것.

a0004645 4ccfc998481d4
입장료는 인민폐로 45원정도 하고, 아침 9시에 개관한다.

아침 9시와 오후 1시에는 성문앞에서 사진찍기 좋은 퍼포먼스가 펼쳐지며,

즉석 재판도 하고 뭐 그러면서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 준다.

물론… 눈씻고 찾아봐도 왕어언孃은 보이지 않는다.

대리에서 볼 것은 숭성사 사찰과 창산(=점창산) 정도.

숭성사는 천룡사라고도 부른다고 하며, 소설 천룡팔부에도 지겹게 나오는 절이다.

a0004645 4ccfcdf5bee71
입구는 이렇지만, 입장료 120원(무지 비쌈)을 내고 들어가면, 그 안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절이 나온다.

하긴 대리국의 國寺니까… 규모는 이해가 된다.

a0004645 4ccfce2e7b2ce
a0004645 4ccfce38b38a9
만년설 덮인 점창산.

산 높이가 4천미터가 넘기 때문에, 웬만큼 더울때가 아니면 만년설이 정상에 덮여 있다.

정상은 마룡봉이라고 한다.

a0004645 4ccfce6a4ecda
정상 아래편 마룡봉 표지석.

a0004645 4ccfce86bae1c
a0004645 4ccfce8ebd56c
이 사찰은 불교의 것이 아니고, 도교의 사찰이다.

점창산 중턱에 있는데, 중화사(中和寺)라고 한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이 불교사찰 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어서 의아했다.

a0004645 4ccfcf428124e
본전안에는 이렇게 도교 도사가 서서 시주돈을 받고 있다.

이 사람이 꽤나 수완이 좋은 사람이니까, 속아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서양인들이 100원-500원씩 써 놓은 시주돈 서명란을 보여주며, 돈 내라고 하는데

돈 내지 않아도 되며, 시주하고 싶으면 단돈 10원을 해도 된다.

서양사람들처럼 수백원 시주하고 내려와서 속쓰리지 않으려면 말이다.

a0004645 4ccfcfb73acb4
중화사의 간개가 적혀있으니, 시간 남으신 분 들은 읽어봐도 좋겠다.

소설 천룡팔부에서도 중화사가 나오는걸 본 기억이 있는데…확실치는 않다.

a0004645 4ccfcfe9b1331

중화사앞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대리시내와 얼하이 호수.

얼하이호수는 남북 50km나 되는 꽤 길고 큰 호수이다.

a0004645 4ccfd010ac08c
중화사 뒷길로 올라가면 일명 ‘창산의 옥 허리띠’라고 불리는 창산 트레킹 코스가 나온다.

길이는 약 12km인데, 대리시를 내려다보며 한가롭게 걸을 수 있다.

한자로는 옥대운유로(玉帶雲游路)라고 한다.

창산 중간에 구름과 함께 걸린 옥 허리띠 라는 소리다.

창산은 가끔씩 구름이 밀려와서 산 허리에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구름을 ‘창산 옥대’라고 부른다.

a0004645 4ccfd09f70ffb
산을 넘어가면, 천룡팔부에서 허죽스님이 바둑두는 장면을 만들어 놓았다.

소림사 화상 허죽 스님은 여기서 전혀 말도 안되는 곳에 포석을 함 으로써, 결국 소요파 장문인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a0004645 4ccfd0cc4acad
바둑판 옆에는 세계최대의 장기판이 있다.

이게 얼마나 크냐 하면,

a0004645 4ccfd0e856d51
앞의 사람과 비교해보면 장기판의 크기를 알 수 있다.

a0004645 4ccfd104b1269
대리 고성안의 오화루.

오화루 근처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사람없는 밤에 잘 찾아보면, 바위가 일양지에 뚫린 구멍과 육맥신검으로 절단된 돌멩이들을 볼 수 있다.

물론 마음착하고 내공 깊은 사람에게만 보이니까…

보일때까지 내공을 쌓으면서 기다려 볼 필요가 있다.

오화루는 올라갈 때 입장료를 내는데,

능파미보를 펼쳐 한걸음에 날아올라갈 수 있으면 무료다.

a0004645 4cd36f874da53
대리에서 볼 수 있었던 구멍뚫린 바위.

음… 단씨가문에서 일양지 수련하면서 뚫은거 아닐까나. ㅎㅎㅎ

어쨌거나 나는 마음이 착해서 일양지에 뚫린 바위도 발견했으니, 나중에 가시는 분 들도 찾아보시길.

이전 기사무당행검武當行劍
다음 기사과(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