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하프소딩 (Half swor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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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하프소딩 (Half swording)

1. 동양의 하프소딩

며칠전 서양검술의 하프소딩을 접해 볼 기회가 있었다.
서울팔괘장연구회 & 백사검술연구회에는 각종 검술의 사범들이 많기 때문에, 이 안에서 동서양 모든 검술의 비교연구가 뭐든지 가능하다.

동양검술에는 일명 ‘진검호신술’, ‘진검봉술’이라고 불렸던 하프소딩이 있다. 1980년대에 진검봉술을 배웠었고, 평소에는 코등이를 빼낸 죽도를 들고 2명이 마주보고 연습하고 대련하고 했었다. 나중에는 검도 호구를 쓰고서 마주서서 죽도를 봉처럼 사용하여 치고받고 하며 자유대련을 하기도 했다.

이 기술은 진검을 칼집에서 빼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기도 했고, 칼싸움에서 붙어서 코등이 싸움을 할때도 사용하는 기술이다.

전체 기술의 형태는 아이키도 장술과 비슷하고, 중국무술에서는 쌍두사 창의 용법과 흡사하다. 중국 팔괘장의 병기중의 하나인 ‘쌍두창(雙頭槍)’은 길이가 1.2m여서 하프소딩 스타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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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두창

결론적으로, 서양검술의 하프소딩과 동양검술의 진검봉술은 약 99% 정도 똑같다. (이하 ‘하프소딩’으로 통일하여 표기한다.)

다른 부분은 칼의 구조와 형태가 달라서 오는 부분 일 뿐이다. 서양검술의 롱소드는 칼의 크로스가드(cross guard)가 좌우로 길기 때문에, 크로스 가드를 이용하여 걸거나 치는 기술이 있는데, 동양 검은 가드의 구조가 달라서 동일한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 서양 롱소드는 크로스가드를 이용하는 기술들이 있다

80년대에도 서울에서 수련되었던 하프소딩은, 당시에는 서양검술이 한국에 전해지거나 자료도 전혀 없던 시절이어서, 서양검술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80년대 중반에는 휴대폰도 없었고, 지금같은 개념의 PC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인터넷은 당연히 없었다.

2. 한국 하프소딩의 실제 사용사례

동양에서 하프소딩은 사실상 사라져 갔다.

현재의 스포츠 검도 경기에서는 반칙이어서 사용할 수 없었고, 진검이나 목검을 사용하는 실전은 존재하지 않으니, 현실에서 하프소딩을 사용할 일이 없었다.

스스로 전통검술을 주장해 온 단체들에서 하프소딩 기술을 사용한 격검을 했었다면, 일본 검도와 차별화 되는 훌륭한 검술 경기가 되었으련만, 전통검술 단체들은 일본검도를 차용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프소딩 이라는 세계가 있다는 것 조차 몰랐다.

한국에서 사업하는 자칭 전통검술 단체들은 일본 검도의 패러다임 안에서 성립된 것 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기도 일본도를 사용하고, 복장도 하카마를 입는다. 말로는 전통을 주장하지만, 일본검도의 체제하에서 조금 변형된 것 일 뿐이다.

한국 땅에 있던 하프소딩이 일본에서 들어온 것인가 아닌가는 현재로써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기술이 완전한 형태로 존재했고, 비공식적으로 제자들에게 지도되어 왔다는 것 만이 팩트이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군에서 훈련된 총검술 훈련이나 실제 격검훈련에서 전해져 온 것일 가능성도 매우 높다. 진검을 사용한 실전이라면, 하프소딩 없이 근접전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검 실전은 죽도 스포츠 검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이다.

기원을 명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한국땅에 있던 하프소딩은 특이하게도 군대로 흘러들어갔다.

한국군의 총검술이 만들어 질 당시에, 검도 고단자들과 합기도 고단자들이 참여했었고, 이들 중에서 하프소딩을 할 줄 아는 사범들을 통해서 하프소딩에 기반하여 총검술이 성립되었다.

한국군 총검술에 있는 ‘막고 찔러 돌려쳐’ 기술은 검술의 하프소딩이 기원이다. 이 당시에 나의 대사부님도 총검술 기술개량에 참여하셨었고, 군대에 초빙되어가서 하셨던 일 들을 오래전에 상세하게 전해 들은 바가 있다.

북한군 총검술에는 총신 총구부분을 잡고 크게 휘둘러 내려치는 기술이 있는데, 이 기술도 서양 롱소드 하프소딩에 나오며, 이에 대응하는 한국군 총검술 방어기술도 나중에 삽입되었다. 지난 역사에서 한국군의 총검술이 몇번 개정된 이유는 그때마다 북한군 총검술의 기술 변화에 따른 것이었다.

한국땅에서 검술의 하프소딩이 활용된 두번째 사례는, 전두환 시대 전투경찰의 진압용 충정훈련 이었다. 전투경찰의 충정봉 기술에는 검도에서 유래한 하프소딩 기술이 녹아 있다. 전투경찰의 충정봉 기법은 하프소딩을 할 줄 아는 검도인들이 참여해서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경찰안에도 검도 고단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것은 일견 당연한 일 이었다.

한국 검도의 3대 뿌리는, 경찰, 교도대, 대학검도부 이다. 일제시대에 경찰과 교도대에서 시작된 검도의 역사가 깊다. 80년대 서울시내에 검도도장이 2개밖에 없었다는 것을, 현대의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80년대 중후반까지 서울에는 검도중앙도장과 구이역앞 천마도장밖에 없었다. 故박성권 선생이 운영했던 다다미 100장 규모의 성동체육관은, 본래 성동서 경찰관들 운동하는 곳 이어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곳이다. 한국의 검도는 위의 3가지 조직에서 기원하고 발전해 왔다. 지금처럼 검도도장이 흔해진 것은 드라마 모래시계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다. 한국검도의 요람이었던 중앙도장은 나중에 사라졌다.

충정봉은 대개 57cm정도 길이의 한손용이 흔했지만, 규격이 통일되어 있지 않았으며 부대마다 길이가 달랐다. 부대에 따라서 70-80cm의 충정봉을 사용하는 곳도 있었다. 80cm가 넘는 충정봉은 하프소딩 스타일로 사용하였다. 필자는 공수부대와 전투경찰이 사용하던 충정봉 훈련과 백골단의 방패사용법을 80년대에 군대에서 배운적이 있다.

시위현장과 같은 혼란스러운 난전(亂戰)에서는 쌍수도 죽도 검도 스타일로 싸우기는 극히 어려우며, 하프소딩 기술이 섞인 봉술이 가장 유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투경찰이나 시위대 양측이 사용한 봉술 기술은 사실상 비슷하였다.

한국땅에 오래전부터 있던 하프소딩은 이렇게 필요한 곳에서 변형되어 명맥을 유지하였지만, 실제 검도계에서는 보기 어려워졌다. 지금도 극소수의 몇몇 사범들은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으니, 맥이 끊어진 것은 아니다.

자칭 전통검술 단체들에서, 일본 검도와 차별화 된 격검 스포츠를 만들겠다면 그것은 근접전 기술의 개발이 좋은 방향이다. 현재 스포츠 검도는 북진일도류에 기반하여 만들어졌고, 근접전 기술 자체를 반칙으로 판정하기 때문이다. 근접전 기술을 도입한다면, 일본 검도와 차별화 된 새로운 동양검술 경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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