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초(姜容樵, 1891~1974)는 현대의 무술가, 무술교육가, 무술이론가로 무당(武當), 팔괘장, 형의권, 태극권, 장점괴(張占魁)가 창안한 형의팔괘권 등 내가권법(內家拳法)에 정통했다. 중국 강소성 제10중학에서 지도한 바 있으며 상해에서 상무진덕회(尚武進德會)를 창립하고, 1930년대에 건강시험사(健康試驗社), 격기시험사(擊技試驗社)를 만들었다. 1946년 사직 후, 전문적으로 무술 서적 저술을 하였으며 제자를 키우고 무술을 전수하였다.
생애
1891년 태어난 강용초(姜容樵)는 무술 가문 출신으로 증조부 강정거(薑正擧)가 비종권(秘宗拳)의 대가였으며 숙부 덕태(德泰, 무진사武進士), 고모부 진옥산(陳玉山)으로부터 ‘철퇴鐵腿’를 익혔고 각종 암기술을 전수받았으며 만능수萬能手 손통孫通에게 다양한 권기와 비종권과 금나술, 격투기를 배웠다. 고작 10여 세에 숙부와 세상을 유람하며 무술계를 구경하였다.
1909년 장점괴 문하에 입문하여 형의권과 팔괘장을 배우며 20여 년 동안 스승으로 모셨다. 강용초는 내가권 권술의 오묘함을 얻었으며, 무공은 그의 선배인 한모협(韓慕俠)보다 약간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장점괴 문하의 으뜸이 되었다. 강용초는 생각이 유연하며 기억력이 뛰어났고 온종일 운동해도 꾀를 부리지 않았다. 한 수 배우면 반드시 이치를 궁리하였다. 강용초는 무예를 익히면서 늘 “한가지 무술만을 하면 안 된다. 잘한다는 것은 완전하고 정교한 것이다. 각 문파를 망라하여 장점과 정수를 모아야 무술을 깨달을 수 있다.”라고 말하여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다.
이림춘李霖春에게 태사편太師鞭을 배웠고 이경림에게서 무당검을, 이우삼李雨三에게는 청평검을, 절친 탕사린湯士林에게는 태극권을 배웠다.
무술계에 대한 공헌
1920년, 진포철도국(津浦鐵路局)의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무술을 교습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강소성 제10중학교에서 가르쳤다. 1928년 상하이에서 이방진(李芳鎭), 서정인(徐靜仁) 등과 사비를 들여 상무진덕회(尙武進德會)를 설립하였고 『당대무인기협전』(12권)을 펴냈다.
1930년대에는 건강시험사(健康試驗社), 격기시험사(擊技試驗社)를 조직하여 무술을 발굴·정리·계승·보급하는 사업을 기획하였다. ‘무술로 신체를 건강히 하고 기술로 적을 공격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때의 적은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을 가르친다.
1932년 남경중앙국술관 편집부 처장으로 12년간 근무하면서 『국술총간(國術總刊)』을 출판하였다. 그동안 강용초는 장지강 관장과 이경림 부관장의 의뢰로 ‘중앙국술관’을 대표하여 지방국술관을 돌며 무술대회를 주관하고 심판을 양성하고 무술을 보급하는 것을 제외하고 중국무술을 연구하고 정리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하남성 온현 진가구, 숭산 소림사, 호북성 무당산, 산서성 포주(蒲州)-포주는 심의육합권의 창시자, 희제가의 고향- 등을 방문하였고 거동이 가능한 무술계 원로들을 방문하고 족보와 가보, 묘비를 찾았으며 향토지를 조사하였다. 만년에는 상하이 훙커우구에 정착하여 옛 장즈장(張之江)의 거처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신작을 저술하였다. 이후 양 눈이 멀었지만, 구술로 후학을 지도하였다.
1953년 11월에는 제1회 중국민족체육공연대회 무술 심판장으로 초빙되었다. (당시 민족체육대회에는 각종 무술들이 포함되었다) 전중국무술대회에서는 형의, 팔괘, 비종, 진씨태극장권, 태사편, 부평검, 팔괘기문창 등 권술과 무기술 시연을 여러 차례 선보였다.
팔괘장과 중국무술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보급하다.
강용초는 무술과 문장에 정통하여 저서가 풍부하다. 『사진비종권(寫真秘宗拳)』, 『사진형의모권寫真形意母拳』, 『형의잡식추팔식권합간(形意雜式捶八式拳合刊)』, 『태극권술강의(太極拳術講義)』, 『사진태사호미편(寫真太師虎尾鞭)』, 『사진태사수마편(寫真太師水磨鞭)』, 『사진편창대전(寫真鞭槍大戰)』, 『사진청평검(寫真青萍劍)』 『곤오검(《昆吾劍)』, 『소림곤법(少林棍法)』, 『팔괘기문창(八卦奇門槍)』, 『팔괘장(八卦掌)』 등 28편을 출판하여 무술 발굴과 계승 발전에 기여했다. 이중 1963년 출간한 『팔괘장』은 재판이 100만 권에 달할 정도로 팔괘장을 총정리하고 널리 알린 영향이 크다. 1974년 8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국정(沙國政), 노영재(盧永才) 등이 그의 뒤를 이었다. 강용초의 저서 『팔괘장』은 한국에도 전해져 한국 쿵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부족했던 수와 기술을 이 책을 보고 보완했다고 한다. 팔괘장의 중조 이자명 노사도 『양진포팔괘장』이라는 책에서 강용초의 『팔괘장(八卦掌)』을 선구적인 업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강용초는 70대에 『근대무술가열전(近代武術家列傳)』, 『형의백형권(形意百形拳)』, 『상형권팔식(象形拳八式)』, 『팔괘산수장(八卦散手掌)』, 『진공철지행록(陳公哲知行錄)』 등의 저서에 착수했으나 안타깝게도 미완성인채로 세상을 떠났다. 진공철(1893—1961)은 정무체육회를 만든 사람이다.
1964년에 정리된 『형의권사승종보(形意拳師承宗譜)』에 기재된 제자로는 강종의(姜宗毅), 강종도(姜宗陶), 장문광(張文廣) 사국정(沙國政), 계원송(季遠松), 조공(曹恭), 양방태(楊邦泰), 추숙한(鄒淑嫻), 노영재(盧永才) 갈천생(葛天生), 심중초(沈仲初) 등이 있다.
이중 사국정(1904—1993)은 중국무술계의 주요 전인으로, 1930년 스승 왕자정(王者政)을 따라 한국의 인천을 방문하여 중국무술을 가르쳤다고 하니, 팔괘장 역시 그때 일부가 전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유투브의 강용초 팔괘장 전인들
https://youtu.be/cdjt2wftg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