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다 류우치(松田隆智,1938年6月6日-2013年7月24日)는 일본의 유명 무술연구가이며 무술가이다. 일본 아이치현 오카자시시 출신. 본명은 마츠다 마사시이다. 류우치는 일본불교 진언종 동사파(真言宗 東寺派) 승려의 법명이다.
마츠다 류우치는 대만 무단(武壇國術推広中心)의 무술가 소욱창(蘇昱彰)에게 배사하고 후에 중국에서 통비문의 마현달에게 배사했다. 자신의 무술 편력을 바탕으로 한 자전 『수수께끼의 권법을 찾아서』를 저술하였고 그것이 나중에 중국 무술 만화 『권아』의 원작이 되어 대히트했다.
또 합기나 발경 등의 과거 비전 기술을, 모든 사람에게 알기 쉽게 전한 공적도 크다.
일본무도잡지인 『월간비전』 등에 주필 격으로 등장하였다. 2013년 7월 24일 7시 39분, 급성 심근 경색으로 사망. 향년 75세.
무술경력
강유류 가라데, 극진 회관의 전신이었던 오야마 도장에도 재적(1967년 4월 15일 3단을 받았다), 시현류 검술, 신음류 검술, 대동류 합기 유술, 핫코류 유술(八光流柔術, 면허개전), 아사야마류 유술 사카이파, 사토 킨베이(중국무술연구가) 등에게 무술 편력을 거듭한 뒤 중국 무술에 빠져들어 본 고장인 대만·중국 대륙으로 건너가서 수련하였다.
무술 수행자로서
중국 전래의 신체수련법이라면 무술로서 소림사 권법 혹은 건강법으로서의 태극권 정도의 인식이 일반적이었던 당시 일본에서 진가태극권, 팔극권, 당랑권 등의 중국무술을 서적을 통해 소개했다. 당시 태극권은 무술에서 유래한 건강법이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지만, 마츠다의 소개로 태극권의 여러 유파 중 진가태극권은 건강법이 아닌, 무술로서 대만에서 전승되고 있다는 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과 중국의 국교 정상화 전에는 중국의 무술 정보는 전무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마츠다 류우치에 의한 대만무술계 정보가 주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 대만 역시 시대적인 제한 때문에 각광받았을 뿐 중국무술의 종주국은 중국 본토이며 중국대륙에서 중국무술이 잘못 전해졌지만 대만에는 그 정화가 온전히 남아있다는 식의 선전은 냉전시대의 왜곡된 사실이었다. 중국의 개혁개방후 이런 불균형은 사라지고 진가태극권의 본거지는 진가구로 사실이 바로잡히게 되었다.
마츠다는 중국무술을 소개할 때 일본의 현대 무도와의 차이점으로 중국에서는 스승으로부터 소질과 수련을 인정받아 선택받은 자가 처음으로 핵심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들며, 그것을 위한 배사제도와 그 배사의식을 소개하였다.
이즈음부터 마츠다 류우치는 중국무술을 신비화하여 선택받은 사람만이 입문하고 그 정화를 배울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대만의 무단의 분위기가 이런 것이다. 대만 역시 중국본토와 교류가 끊어진 상태에서 무술이 신비화된 것이다. 현대 중국에서 배사제도는 구시대의 유물로서 인기가 줄어들고 있는 상태다.
배사라는 것은 유사가족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며 비밀결사나 방회 등의 의식과 비슷해서 무술의 스포츠화가 되는 시점에서는 불필요한 제도이다.
1970년대 일본에서 중국무술의 본격적인 교습이 일어나던 시기에서도 마츠다 류우치는 자신의 체육관을 운영하지 않고 ‘무술가는 자신의 조직의 영업, 조직적 발전은 관심을 갖지 않고, 수행에만 힘쓴다’는 입장을 취했다.
마츠다 류우치 이전에는 중국권법이라는 말도 일반적이지 않고, 가라테와 혼동되기도 했다. 일본 국내에서는 이소룡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어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액션 스타의 출현”, 혹은 “중국 가라테의 달인”이라는 소개를 받았지만 마츠다 류우치가 한 영화 잡지에 이소룡이 정통한 영춘권 문인이며 1인치 펀치를 가라테 대회에서 시연한 것 등을 소개했다.
마츠다 류우치의 대담집 『혼의 예술』에서는 타류 무술가뿐만 아니라 뮤지션, 종교학자, 소설가와도 대담하며 무술을 어떻게 살상의 기법에서 道의 경지까지 높일 것인가라는 진지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마츠다 류우치가 일련의 저작을 출판하던 같은 시기 경쟁하듯이 사토 킨베이, 카사오 쿄지 등도 연달아 저작을 발표하여 일본에서 “중국권법”이라고 하는 말이 정착했다. 이러한 저작에 영향을 받아 대만이나 중국-일본 국교 회복 후 중국에서 배운 사람들이 늘어나 대중화가 진행되어 갔다. 이 점에서 마츠다 류우치는 중국무술을 일본에 소개한 선구자이며 훌륭한 무술연구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무술에는 경기를 하는 근대무도와 경기를 하지 않는 고무술이 있다. 후자는 그 이유로서 “무술은 위험한 기술이라 경기시합은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마츠다의 입장도 고무술의 입장과 같다.
마츠다는 초기 저작 『수수께끼의 권법을 찾아서』 등에서 일본의 가라테에는 맨손에 의한 실전 기록이 적기 때문에, 유명무실해진 “일격 필살”이라고 하는 말을 문자 그대로 체현 할 수 있던 인물로서 팔극권의 이서문, 형의권의 곽운심 등을 알게 된 감동을 솔직하게 저술했다.
마츠다 류우치는 대만의 무단을 통해 팔괘장을 배웠지만 팔극권과 함께 평생 팔괘장을 아꼈으며 팔괘장을 무척 신비화하였다. 대만 무단이 팔괘장을 불충분하게 배웠기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츠다 류우치는 무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방’이라고 보고, 그 자신의 이상을 실현한 중국무술로 팔극권을 꼽았으며 명작 무술 만화 『권아』의 대본을 썼다. 정작 중국본토에서는 지방 권법으로 중앙무대에는 올라오지 못한 팔극권을 유명하게 만들고 팔극권사 오련지 노사를 일약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마츠다 류우치가 생각하는 실전이란, 심판과 룰이 있는 풀콘택 시합이 아니라 심판과 룰이 없는 결투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역설적인 것이 현대법치사회에서는 결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단 한 번 있을 결투를 위해 한 방을 갈고 닦는 수행자로서의 무술가는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존재하지 않는 무술가의 이미지를 (자신의 만족을 위해) 구축하기 위해 마츠다 류우치는 만화 『권아』의 대본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일격필살이 가능한 한 방이 있는 무술을 위해서는 발경과 발력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위력을 가진다는 설정을 할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은 중국무술의 신비화로 이어졌으며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중국무술의 완성을 알리기 위해 만화 『권아』의 대본을 썼다는 인생의 역정은 참 일관되어 있다.
마츠다 류우치는 무술에서 중요한 것이 ‘한 방’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런 맥락으로 쓰인 초기 저작물을 읽지 못한 채 『권아』의 원작자인 마츠다밖에 모르는 상태에서 중국 본토에서 중국권법을 배운 사람들 로부터는 마츠다 류우치가 『권아』에서 의도적으로 이서문의 최강 신화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는 편협된 인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이서문과 팔극권을 선택한 것은 평소 ‘한 방’의 신화에 집착하던 마츠다 류우치에게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의 무술 여정을 완성해 줄 소재로서 팔극권의 충추가 필요했던 것이다.
마츠다의 저서 『도설중국무술사』에서 이서문의 제자라고 소개된 마봉도, 한화신, 장옥화 등 역사적인 달인들은 모두 이서문의 제자가 아니다. 또 이 책에서는 팔극권의 정통은 이서문에 게 있다고 여겼으며 훗날 마츠다가 적극적인 교류를 한 오씨 개문팔극권에 대해서는 전혀 기술하지 않았지만 이는 『도설중국무술사』의 초판이 1976년이며 마츠다가 중국의 무술가와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마츠타의 도설 『도설중국무술사』를 베이징도서관에서 읽은 마현달(*창주출신 유명무술가)이 마츠다에게 연락을 취하며 교류가 시작되었는데, 마현달과 오씨개문팔극권 사이는 좋지 않아 이 사이를 줄타기한 처세술만큼은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1985년 제8회 일본 고무도 연무대회로 개최된 중일 친선 무도연무 교류대회에서 참여한 중국 무술인 출신은 마츠다 류우치가 골랐다고 한다.
일본 고무도와의 관계
마츠다 류우치는 중국 권법의 소개자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일본 고무도의 소개자로서 공적도 크다. 유도나 검도, 가라테는 학교 클럽이나 지역 도장, 경찰서 등에서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지만, 고무도는 개인적, 지역적 연고가 없으면 그 존재조차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마츠다 류우치는 직접 신음류검술, 시현류검술, 수행체험이나 일본 각지의 고무술 도장을 방문한 경험을 기초로 『비전·일본유술』, 『수수께끼의 권법을 찾아서』 등을 저술해 일본의 고무도의 존재를 알린 공적이 크다. ‘일본에는 독자적인 발전을 이룬 뛰어난 무술이 있다’는 생각으로, 스포츠화, 경기화하려는 무술에 의문을 가져 ‘일본의 무도를 (스포츠화 하지말고)원점회귀’하라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또 자신의 제자를 아사야마 잇덴류(淺山一伝流體術) 체술의 사카이 에이지에 입문시키는 등 고무술의 보존에도 힘썼다.
미디어, 영상 자료 등
어린이를 위한 TV프로그램 ‘히라케!폰키키’에서 ‘쿵푸레이디’라는 곡의 영상에 출연, 진가태극권의 투로인 노가, 홀뢰가, 역벽권, 당랑권의 투로인 붕보권 등 당시는 매우 귀했던 투로연무를 일본에서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하여 전국적인 유명인이 되었다.
타케다 테츠야가 주연한 영화 “형사 이야기”시리즈 (1982년-1987년)에서 타케다가 분한 카타야마 형사가 당랑권을 이용한 액션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는 마츠다의 연기 지도에 따른 것이다. 또한, 극중에서 목제 옷걸이를 쌍절곤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타케다가 스스로 고안한 것이라고 한다.
https://youtu.be/GIp92zWLI9Q
https://youtu.be/OnEP0mZOJRs
1987년 격투기 폼 등의 연구로 알려진 당시 중부 대학 조교수였던 요시후쿠 야스오의 연구에 협력했다. 요시후쿠는 마츠다의 촌경을 측정해, 발경 경력의 역학적인 특성의 일단을 밝혀냈다.
마츠다는 만화 『오토코쿠미男組』에 협력한 뒤 만화 『권아拳児』의 원작을 썼다. 『오토코쿠미男組』의 작화가 이케가미 료이치와 『권아拳児』의 작화가 후지하라 요시히데와는 사제 관계에 있고, 후지와라는 이케가미의 어시스턴트를 하였다. 『권아拳児』는 『주간소년선데이』에 1988년 2,3호에서 1992년 5호까지 연재되었다. 단행본은 소학관: 소년선데이코믹스에서 전 21권(후에 외전1권)이 간행되었다.
마츠다 류우치는 살고 싶은데로 살며 자신의 이상을 사회에 주입하고 보편화 하였고 『권아拳児』를 자신의 자서전으로 남겼다. 일본의 고무술과 중국무술계는 아직도 마츠다 류우치가 설계한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츠다 류우치가 훌륭한 중국무술연구가이며 시나리오 작가이며 기획자인 것은 분명하다.
‘한 방’단련을 위한 찌르기 단련을 위해 2003년 12월 65세의 나이로 형의권 붕권을 100만회 연습을 시작, 다음해 4월 완수하였고 동년 7월 팔극권 충추 100만회 수련을 개시, 2005년 완수하였다고 한다. 잇달아 1000만회 하기로 약속했지만 2013년 사망하면서 기록은 291만 7200회에 그쳤다고 한다. 물리적으로 5개월 만에 붕권 100만회가 불가능할 것 같지만, 했다고 하니 믿어주는 수밖에.
저서목록
『도설중국무술사』 新人物往來社
『비전 일본유술』 新人物往來社
『중국무술』 新人物往來社
『건강한 몸을 만드는 동양의 비법』 佼成出版社
『터프한 몸을 만드는 중국의 비술』 佼成出版社
『소림권입문』 産報出版
『태극권입문』 産報出版
『중국권법 형의권입문』 日東書院
『비전 진가태극권입문』 新星出版社
『수수께끼의 권법을 찾아서』 東京新聞出版局
『마츠다류우치의 권유기』 BABジャパン
『사진으로보는 실전중국권법』 新星出版社
『혼의예술』(대담집) 福昌堂
『권아』(만화), 주간소년선데이, 小學館
『사진으로보는 중국권법입문』 新星出版社
『신비의 권법 팔괘장입문』 日東書院
『실전중국권법 비문당랑권입문』 日東書院
『사진으로 생각하는 교문장권 중국무술입문』 土屋書店
『소림권술나한권 기본에서전투기술까지』 土屋書店
『연속사진으로보는 중국북파권법입문-공력권, 손빈권, 역벽권의 형과 용법 소개』 新星出版社
『중국전통개문팔극권-통비문의 전모』 福昌堂
(일본 위키피디아를 기본으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