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괘권 벽괘장 劈掛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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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괘권 벽괘장 劈掛拳

벽괘권(劈掛拳)은 전형적인 장거리 공격류 권술이다. 옛 이름은 피괘권(披掛拳)이며, 말면권(抹面拳)이라고도 불린다. 손바닥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벽괘장(劈掛掌)’이라고도 한다. 청나라 시대 하북성(河北省) 염산(鹽山)과 창주(滄州) 일대에서 전해졌으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반문학(潘文學), 이운표(李雲標), 황림표(黃林彪), 마봉도(馬鳳閼), 마영도(馬英圖) 등이 있다.

벽괘권은 상지의 벽(劈), 괘(掛), 쇄(摔), 탄(彈), 합(合), 참(斬) 동작을 위주로 하며, 교차하여 걸고 쪼개는 동작 중에 어깨를 이완시키고 등을 펴고, 팔이 일어날 때 부드럽고 빠르게 움직이며, 힘이 투명하고, 쪼개어 내릴 때 힘이 폭탄처럼 맹렬하게 발산되는 등, 부드러움 속에 강함이 있는 특징을 보여준다. 벽괘권은 허리를 중심으로 움직이며, 가슴을 삼키고 내뱉는 동작과 허리를 비틀고 접는 동작을 팔의 움직임과 조화시켜 동작을 크게 벌리고 합치는 것을 중시한다. 발걸음은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빠르게 움직인다. 벽괘권의 힘쓰는 방법에는 투명한 힘, 삼켰다 뱉는 힘, 굴리는 힘, 휘감아 조이는 힘, 뒤집어 당기는 힘 등이 있다.

격투에서는 공격에 따라 공격하고, 형태에 따라 기세를 만들어내는 것을 중시한다. 멀리 나아가고 빠르게 물러서는 가운데, 제자리에서 “전지(轉趾, 발끝으로 비벼 돌기)”하는 방법으로 방향과 자세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기본 공격과 방어 원칙은 “높게 오면 걸고, 낮게 오면 쪼개고, 가로로 오면 막고, 순하게 오면 옮긴다(高來則掛,低來則劈,橫來則攔,順來則搬)”이다. 벽괘권의 특징은 통비권과 유사하여 청나라 말기에는 통비권 계열의 한 지파로 여겨져 “벽괘통비(劈掛通臂)”라고도 불렸다. 황림표와 그의 제자 마봉도의 노력으로 벽괘권을 중심으로 한 통비권이 형성되었다. 벽괘권은 “큰 자세(大架子)”를 근본으로 삼고 연습 중에 “느리게 당기고 부드럽게 연습한다(慢拉柔練)”는 것을 요구하며, “12대당자(十二大趟子)”와 “10로 탄퇴(十路彈腿)”를 기본 기능으로 삼는다. 그 외에도 1로 벽괘권, 2로 청룡권, 3로 비호권, 4로 태숙권 등 4가지 기본 초식이 있다.

근대에 창주에서 이 권법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졌다. 그와 함께 벽괘권 명인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소화성(肖化成), 이운표, 조세규(趙世奎), 황림표, 곽장생(郭長生), 마봉도, 마영도, 조안해(曹晏海), 좌청갑(左清甲) 등이다.

1928년 남경에 중앙국술관이 설립되었고, 벽괘권은 연구 및 연습하는 고급 권술로 지정되었다. 당시 국술관 소림과 과장이었던 무술 대가 마영도와 국술관 특별 초빙 교수였던 무술 대가 곽장생은 공교롭게도 당시 창주 염산과 남피의 두 벽괘권 대표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나자마자 서로 통하고 격투 기술을 연마하여 오랫동안 분리되어 있던 두 지파의 벽괘권이 “깨진 거울이 다시 합쳐져 하나가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원래의 벽괘권을 재수정하여 수정된 벽괘권은 “운치가 배가되고 모습이 새로워졌다.” 이는 벽괘권이 번성하고 전승되는 과정에서 질적인 도약이었다고 할 수 있다.

벽괘권에는 원래 전해지는 무기 초식이 없었지만, 곽장생과 마영도는 이 권법을 체계화하고 완성하기 위해 1930년대 초에 풍마곤(瘋魔棍)과 벽괘도(劈掛刀)를 창안하여 벽괘권 계열에 무기 초식이 없다는 공백을 메웠다. 이후 곽장생은 고도(古刀)의 정수를 모아 벽괘의 허리 기술과 통비의 보법을 넣어 한 줄의 묘도 연격 기술을 더욱 발전시킨 이로 묘도를 창안했고, 이후 묘도도 벽괘권 계열의 무기 초식으로 여겨졌다. 1937년 곽장생은 고향으로 돌아간 후에도 벽괘권의 정수를 연구하고 그 특징을 빠르게 변화하고 힘을 모아 길게 내는 기술 특징으로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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