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덕관(劉德寬, 1826년-1911년), 자는 경원(遠遠), 하북성 창주(昌州)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무술을 익혀 육합권법(精大合權法), 대창(大槍)에 정통하여 무림인으로부터 ‘대창류(大槍劉)‘로 칭송받았다. 류덕관은 유기란(劉奇蘭), 곽운심(郭雲深), 양로선(楊露禪) 등에게 사사하였으며 후에 팔괘종사 동해천의 문하에 배사하여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 류덕관은 윤복尹福, 마유기馬維祺, 사기동史紀棟, 정정화程庭華, 송장영宋長榮, 송영상宋永祥, 유봉춘劉鳳春과 함께 팔괘장 팔대제자로 불리운다.
유덕관은 보표 생활을 하며 전국을 누볐으며 견문이 넓었으며 무인답지 않게 문학적 교양이 높았다. 정정화程庭華, 이존의李存義와 모임을 만들어 팔괘, 형의, 태극의 세 문파가 서로 교류하며, 제자를 가르쳤다. 유덕관 팔괘장의 동정과 개합에는 자신의 뚜렷한 특징이 있어 ‘유식팔괘’라고 한다.
유덕관은 실질적으로 팔괘장과 중국 북파 무술을 종합하고 실전기법을 보급하였다.
유덕관은 신기영(神機營)과 화성표국(和盛鏢局)에서 근무하였다. 창주의 육합권 대가 이봉강李鳳崗에게 사사하고 전춘규田春奎, 서육徐六 등의 권기를 익혔으며, 육합대창에 정통하였다. 중년에 북경과 천진을 누비며 동해천에게 팔괘장을, 양로선에게 태극권을 배웠다.
유덕관의 팔괘창 솜씨는 거울 위의 파리를 잡는다 하여 신창유神槍劉라 불렸다. 군대에서 교습할 때 악씨팔번권嶽氏八翻拳을 기본으로 가르쳤으며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팔괘장의 직선투로인 팔괘직탕64장(直趟八卦六十四掌)를 만들고 보급하였다. 팔괘직탕64장은 동해천이 전한 팔괘장의 기법을 바탕으로 한 팔괘장의 실전수이다.
유덕관의 제자가 다수인데, 대표적으로 유국준劉國俊, 유봉축劉風祝, 고문성高文成, 조흠주趙鑫州, 헝수산恒壽山, 허우생許禹生, 유광두劉光鬥 등이 있다. 또 오준산에게 팔괘태극권, 양식 태극권과 자신이 만든 팔괘64산수장을 전하였다.
일설에 따르면 유덕관은 당시 베이징의 동해천이 팔괘장에 정통하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찾아갔다고 한다. 유덕관의 연무 모습을 본 동해천은 “잘 하는데 사람을 대적할 수준은 아니군.”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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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관은 불복하여 창으로 동해천을 찌르자 동해천은 손가락으로 창 끝을 잡고 창대를 움직여 유덕관을 쓰러뜨렸다. 유덕관은 이에 동해천을 스승으로 모셨다. 동해천은 “기초는 좋은데 연습법과 용법을 바꿔야 해.”라고 하였다. 유덕관은 동해천의 가르침을 통해 육합창의 정수를 그대로 연마하고, 팔괘장의 주권을 결합해 ‘팔괘창’이라고 명명했다.
유덕관의 기예는 아들인 유국준이 전수받았다. 유덕관의 창술은 5가지 자세에, 5가지 투로가 있는데 간단하지만 매우 실용적이었다.
악씨팔번권은 중국 북파 무술 실전기법의 정화이다.
악씨팔번권嶽氏八翻拳과 팔괘직탕64장은 중국 북파 무술 실전 기법의 정화라고 할 수 있으며 중국 북파 무술을 실전적인 기법으로 바꾼 장본인이 유덕관이다. 게다가 태극권, 형의권, 팔괘장을 함께 수련하는 전통을 만든 사람도 유덕관이며 팔괘장에 형의권 기법이 많이 들어와 있는 것도 유덕관의 영향이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무술가는 아니지만 중국 북파 무술의 전반적인 모습을 근대적으로 바꾼 무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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