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많은 검술이 있으나, 그 뿌리는 몇가지 되지 않으며, 최근에는 서로 섞이고 융합되어 근원을 추적하기 쉽지 않다. 중국 권법이 2천여가지라고 하지만 크게 북파와 남파로 나눌수 있듯이, 검술도 불과 3-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중국 북파의 검술들은 대표적으로 청평검과 곤오검, 삼재검 등등이며, 그 외에 순양검이 있는데, 팔괘검술은 순양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순양검 계열의 검법은 무당파, 팔괘장, 팔극권 등에서 채용하고 있다. 무당파에는 무당순양검이 중요한 검맥으로 존재하고, 팔극권에는 팔극순양검 이라는 검법이 있다. 하북성 창주라는 지역의 특성이 영향을 미친 탓인지, 팔극순양검은 어딘가 청평검의 느낌이 섞여 있다. 무당 순양검과 팔괘 순양검은 서로 비슷하지만, 팔극 순양검은 조금 다른 느낌이다.
순양검이라는 이름은 팔선의 한명이자 검객으로 유명했던 여동빈(呂洞賓) 도사의 도호인 ‘순양자’에서 유래했다. 여동빈은 산서성 출신으로, 당나라 말인 798년 4월 14일에 태어났다. 그는 많은 에피소드를 뿌리면서 여러 시대와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며, 중국인들이 상당히 존경하고 사랑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여동빈은 섬서성 화산 옆에 있는 종남산에서 종리권 도인을 만나 도를 닦기 시작했다고 한다. 종남산은 종남산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만큼 큰 산군(山群)인데, 종남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흔히 종남산이라고 부른다. 여동빈은 과거에 떨어지고 울적한 나날을 보내다가, 중년 이후에 만난 종리권 선인을 따라 종남산 학정봉 중턱의 동굴에서 수행을 했다.
스승인 종리권과 헤어진 여동빈은 방랑하다가 강서성 여산에 이르러, 이곳이 자신에게 예언된 곳 임을 깨닫고 여기서 다시 장기체류를 하며 수행을 계속한다. 그는 여산에서 화룡진인(火龍眞人)을 만나 ‘천둔검법(天遁劍法)’을 전수받았다 하며, 그 후에 검객으로써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천둔검법은 요마(妖魔)를 잡는 검술이라고 하니, 검술(劍術)이라기 보다는 도술(道術)에 가까웠던 것 같다.
여동빈이 남겼다고 알려져 있는 저서로는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가 있는데, 청나라 강희제때 신내림을 받은 도교 제자들이 적어내린 책으로써, 지금도 시중에 번역 출간되어 있다.
이렇듯 순양검은 순양진인 여동빈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중국 북파의 유명 검법으로써, 도교와 관련이 있는 무당파와 팔괘장에서 채용하여 발전시켜 왔다. 순양검의 특징은 길이가 조금 긴 장검을 사용한다는 것이며, 검의 회전과 검화가 화려하다는 특징이 있다. 삼면화(三面花) 기법도 순양검에서 흔히 수련되는 연습법이다.
태극검은 검이 붙었을 경우에 대개 찰검으로 칼날을 붙이고 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순양검법은 검이 부딪혔을 경우에 화려한 검화의 전환식으로 상대의 병기를 타고 넘어 공격해 들어간다. 이런 공방원리와 신법, 보법은 정면충돌을 피하고 측면에서 공격하는 팔괘장의 피정타사(避正打斜) 전투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현재 중국 우슈의 규정 초급검술들은 순양검이 아니라 청평검과 삼재검에 가까우며, 특히 태극검은 순양검과 다른 흐름의 검술이다. 아마도 우슈 3단검술, 4단검술 그리고 태극검을 배운 사람들은 순양검법의 흐름이 조금은 다르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검법은 본래 실용적인 목적이 아니라 주술적이거나 호신용, 혹은 연무자들의 정신적 만족때문에 발전되어 온 기술이다. 전투에서 실용적인 것 만을 추구한다면, 도법이나 창술을 사용하는 것이 보다 훌륭한 선택이다.
순양검법은 창시자는 모르지만, 신화적 인물인 여동빈의 이름을 가탁하였다. 도사, 도교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뭔가 신비적이다. 이 이미지에 걸맞게 결론적으로, 순양검법은 상당히 멋있다. 아름다움으로 따지면 중국검술 중에 단연코 으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