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춘권의 창시자는 엄영춘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 사내 냄새 풀풀나는 마초맨들의 영역인 무술에서 여성이 창시자인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중국 남부는 종법 질서와 가부장적인 면이 더 두드러진 곳입니다.
팔괘장의 창시자는 동해천입니다. 동해천은 묘비의 기록대로 라면 살인을 해서 감형 받는 조건으로 거세를 한 사례에 해당하고 한 왕부에서 일하며 팔괘장을 보급했다고 합니다. 팔괘장에 창시자의 신체적 특징이 반영된 특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해천은 타의에 의해 형벌을 받아 거세된 만큼 성 정체성은 전형적인 스트레이트 남성이었을 것입니다. 팔괘장의 ‘팔괘’는 방향을 상징하고 팔괘장은 보법이 화려합니다. 동해천의 연무 모습은 안 남아있지만, 아마 팔괘장 연무할 때 알리 정도의 신법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팔괘장은 탄생한지 150여 년이 넘은 전통무술이지만 현대적인 면이 매우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연 한 무술의 창시자가 여성이 될 수 있을까요? 걸크래쉬와 정치적 공정성을 우선시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금기시되는 질문입니다. 여성도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현대 기준으로 여성도 무술을 창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엄영춘의 전설은 150여 년이 훨씬 넘은 시간을 배경으로 합니다. 현대인의 윤리로 과거를 재단해서는 안 되겠죠.
영춘권이 창시자가 여성이라는 것은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과거 전통시대의 사람들은 현대인들이 혈액형 성격 판별과 MBTI에 푹 빠진 것처럼 태극과 음양 이론에 푹 빠져 세상 사물들을 음양의 범주로 나누어 놓았죠. 미신 여부를 떠나 과거의 세계관이었습니다. 해는 양, 달은 음, 여성은 음, 남성은 양 이런 식이죠.
독일어에 남성명사와 여성명사가 있다고 미신은 아닙니다. 명사의 성별에도 남성적인, 여성적인 가치가 투영되어 있습니다. 독일이나 프랑스인들은 처음 듣는 단어도 남성명사인지, 여성명사인지 대충 구별을 한다고 합니다. 자신들만의 내재적인 기준이 있겠죠.
음양도 이렇게 구분을 할 수 있습니다. 무술에서도 모든 사물이나 방법을 음양으로 구분해놓죠. 강맹한 펀치는 양의 기술입니다. 하지만 꼬집거나 할퀴는 방법은 음의 기술입니다. 음공이라고 합니다. 꼬집거나 할퀴는 기술을 어느 성별이 자주 사용하는지 명확합니다. 그래서 음공이라고 하는 거겠죠. 음공으로 공격당하면 그 부위가 강력한 음의 기운으로 썩는다고 합니다. 당연히 위생이 불결한 옛날 사람들의 손톱에는 세균이 많았고 피부를 할퀴면 감염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런 메커니즘을 음의 기운에 당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영춘권은 어떻습니까? 영춘권의 기원인 복건성의 백학권은 창시자 방칠랑이 학과 뱀의 싸움을 보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학이 싸우는 방식은 눈에 선합니다. 성큼성큼 걸어가 발톱으로 할퀴고 부리로 쪼고 뒷걸음쳐 회피기동을 합니다. 전형적인 음의 방식입니다. 음의 방식의 기술대로 만든 것이 백학권입니다. 강맹해서 뭐든지 때려 부수는 무술의 대표격인 소림권과는 차이가 납니다.
전통시대 기준으로 무술의 특성이 전형적인 음의 기술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창시자가 남자면 얼마나 황당할까요? 전통시대에는 이런 것들이 남자가 임신하고 애를 낳을 것처럼 황당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일관성을 위해 창시자가 여성으로 위조된 것입니다. 사실 창시자가 누군지는 몰라요. 전통시대 세계관의 논리적인 귀결로 여성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방칠랑의 고사는 엄영춘의 탄생에 영향을 미쳤고, 방칠랑이라는 인물이 엄영춘으로 둔갑을 한 것입니다. 엄영춘은 대부분의 무술 고사가 그렇듯 입에서 입으로 완성한 것이고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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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장군의 아들이라면 아들이지 불만 있는 사람 나와!’ 이렇게 역사가 위조되는 것입니다. 견훤이 누구의 아들이다, 궁예가 누구의 아들이다는 다 자기들이 만든 거고 그것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없어졌을 테니까 한 세대만 지나가면 거짓이 진실이 되고 전설이 되었을 것입니다.
영춘권은 기술이 전통시대 사람들 생각으로 음의 기술로 이루어져 있었고 따라서 창시자가 반드시 여성이어야 했던 것이죠. 여성이 만들어서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이길 수 있다라든가, 이런 현대의 설들은 설화의 구조를 이해 못 해서 떠도는 낭설입니다.
주문이 아니라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현실에서는 힘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이기고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이기는 것이 정석입니다. 그래도 여성은 물리적으로 남자보다 약한데 여성이 창시자가 된 것은 진실이라 그런 것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성 신격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관세음보살, 성모마리아, 아테네 모두 여성 신격인데 신화 속에서는 남성과 동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격의 속성에 여성적인 면이 있는 것이죠. 현실대로라면 캡틴마블이 누구 하나 이기겠습니까? 영화적인 설정으로 이기는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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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문은 북방에서 온 창녀와 기공 대결을 해서 이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은 남녀의 성대결이 아니라 남성적인 힘인 양과 여성적인 힘 음의 상징적인 대결로 보았습니다. 영화의 캡틴마블이 센 것처럼 북방의 여성 기공사가 엽문을 이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결과는 엽문이 이겼지만, 엽문의 무술도 영춘권이며 음적인 기술인데, 결국 음의 힘이 음의 힘을 이긴 것이라 역설적이다는 내용입니다.
내기의 조건대로 엽문은 창녀를 무료로 이용했을까요? 후일담은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알려진 대로 성품이 도덕적이고 공정한 사람이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춘현의 백학권이 광동성으로 와서 영춘권으로 변한 것인데 백학권과 영춘권의 모습은 현재 매우 다릅니다.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한 가지 가설은 백학권을 전래된 19세기 중반에 영춘권을 수련한 집단이 홍선(레드보트)를 타고 중국 남부의 수로를 누비며 공연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광동성 주강 삼각주는 엄청난 지역이죠. 농업생산량도 높고 양잠도 많이 했습니다. 홍선 가극단은 홍선을 타고 다니며 정박하고 가극 공연을 했는데, 공연의 특성상 경극처럼 액션 장면이 많았고 영춘권을 배워 액션을 했다는 것입니다.
배 위는 공간이 협소하니 목인장 수련을 하고 백학권에서 지금의 영춘권처럼 스타일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홍선 집단은 반란에 결부되서 정부군에게 일망타진됩니다. 그 이후에 영춘권은 전수는 배 위를 벗어나 우리가 아는 계보를 따릅니다.
영춘권의 발전은 중국 남부라는 특이한 지역의 직능조합과 홍콩의 경제적 발전을 통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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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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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권의 창시자는 여성인가? – 아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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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권은 왜 백학권과 모습이 다른가? – (한 가설에 의하면) 홍선이라는 가극 집단이 배 위에서 수련이 쉽도록 백학권을 개편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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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권은 여성적인 권법인가? – 한 기술에 성별의 속성을 부여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