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동양의 바스타드검

0
일본도, 동양의 바스타드검

일본도처럼 한쪽에만 날이 있는 것을 ‘도’라고 하고 양쪽에 모두 날이 있는 것을 ‘검’이라고 한다. 

검은 찔렀을 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무기이고, 도는 베었을 때 치명상이 가능한 무기이다. 검도 벨 수 있고, 도도 찌를 수 있으나, 대표 기법은 다르다. 이 두가지 무기는 구조가 다르니 대표적인 사용 용법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검(劍)과 도(刀)에 대해서 무예도보통지 <예도편>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양날 칼을 “검(劍)”이라 하고, 외날 칼을 “도(刀)”라고 하는데, 후세에는 ‘검(劍)’과’도(刀)’가 서로 혼용 되었다. 고대에는 검(劍)을 숭상하고, 후세에는 도(刀)를 숭상한 것은 칼의 날카롭고 둔한 차이에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습속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 무예도보통지 예도편

융원필비 <환도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옛날에는 도(刀)와 검(劍)이 제도가 다르고 부르는 이름도 달랐다. 도(刀)는 자루가 길고 칼날과 모철(冒鐵)이 있다. 검(劍)은 자루가 짧고 날이 길며 칼집이 있다. 지금의 사람들은 자루와 날의 길고 짧음과 고리와 칼집의 있고 없음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도(刀)라고 부른다. 하지만 도(刀)는 패용(佩用)하는 병장기가 아니며 창(槍)과 같은 종류임이 명백하다.”
– 융원필비 환도편

무예도보통지에서는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이렇게 표현한다.

“고대에는 검(劍)을 숭상하고, 후세에는 도(刀)를 숭상한 것은 칼의 날카롭고 둔한 차이에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습속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 무예도보통지

이 표현은 지금 보아도 최고의 명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습속이 같지 않다’는 서술은 검과 도의 형태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 하다는 것이 아니라, 두가지의 용법을 모두 다 사용하는 무기가 선호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생각이다.

청나라 정부의 공식 도검, 청도

명나라가 끝난 후, 청나라에 이르러 대개의 제식검은 일본도의 칼날에 중국도의 자루를 붙인 하이브리드 형태로 진화한다. 일명 ‘청도(淸刀)’라고 불리는 이 칼은 검과 도의 장점을 포용하여 만들어졌다.

일본도, 동양의 바스타드검
청나라의 칼, 청도
51830644075 b3c3dd25ef z d
청나라의 도, 청도

아마도 명대에 왜구와의 전쟁, 조선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두가지 무기의 장점을 결합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청도(淸刀)’가 일본도의 칼날형태로 진화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중국의 바이두 백과사전에서는 청도(清刀)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청도(淸刀)는 곧 청나라 시절의 제식군도(淸代制式軍刀)를 가리킨다. 청대의 제식 군도에는 순도(顺刀), 와도(窝刀), 찰도(札刀), 박도(朴刀), 참마도(斩马刀) 등이 있었다.
청도(淸刀)는 고금의 특색을 집약하고 있으며, 중국과 외국의 정수를 끌어모아 만들었고, 고색(古色), 고향(古香), 고풍스러움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가히 클래식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청도(清刀)는 관도제식(官刀制式)으로 그 형태는 당시의 여러 나라와 문화 교류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중국식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이며, 심지어 인도, 터키, 몽골의 영향을 받은 특색도 가지고 있다.

 청도(淸刀)가 일본도의 영향으로 만들어 졌다고 공개된 백과사전에 써 놓을 정도이니, 이는 중국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일본도의 효용성은 그 구조에 있었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법과 도법을
둘 다 사용할 수 있는 칼,
그것이 일본도 이다.

일본도는 하이브리드

중세부터 일본도는 이미 최고의 하이브리드 칼 이었으며, 이 무기는 한가지로 검법도 사용할 수 있고, 도법도 사용이 가능하다. 도와 검의 장점이 결합된, 근현대 최고의 칼 이라 칭송해도 과하지 않다.

일본도
일본도의 코등이 부분
동양에는 하이브리드 칼 써 일본도가 있듯이, 서양에는 바스타드 검이 있었다.

최종병기, 바스타드 검과 일본도

1422년 벌어진 벨린초나 전투(The Battle for Bellinzona)에서, 당시의 스위스 용병들은 베기와 찌르기가 동시에 가능하고 양손 검과 한손 검의 장점을 모두 갖춘 새로운 개념의 검을 사용해 전투에서 승리했다. 베기와 찌르기, 두가지가 다 가능했다는 점에서 바스타드검은 일본도와 통하는 바가 있다.

벨린초나는 알프스에서 마조레 호수로 흘러드는 티치노 강 유역의 고지대에 건설된 도시이며, 초기 신석기 시대부터 정착이 이루어졌고 로마 지배 당시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요새가 건설되었다. 현재 벨린초나 성은 15세기에 건립된 3개의 성채가 남아있으며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일본도도 역시 베기와 찌르기 양쪽이 모두 가능하고, 한손과 양손 두가지 그립이 가능한 칼 이었다. 태도처럼 길지 않아서 한손으로도 쓸 수 있었으며, 쌍수로 잡고 싸워도 불편하지 않은 충분한 길이를 갖고 있었다.

51830264564 6c916a0d37 z d
바스타드 검
51829921961 de45f3f3df z d
스위스 벨린초나 성

일본도처럼 한 개의 칼로도법과 검법을 모두 쓸 수 있다는 것은 획기적인 발상이었으며, 거슬러 올라가자면 삼국시대의 환두대도를 계승하고 있는 칼 이라고도 볼 수 있다. 중국에도 환두대도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이 칼로 검법과 도법 두가지를 모두 사용했었을 것이다.

http://34.64.77.131/%eb%ac%b4%ec%88%a0%ea%b3%bc-%ea%b2%a9%ed%88%ac%ea%b8%b0%ec%97%90-%eb%8c%80%ed%95%9c-%eb%aa%a8%eb%93%a0-%ec%a0%95%eb%b3%b4/%eb%8f%84%ec%99%80-%ea%b2%80%ec%9d%84-%ea%b5%ac%eb%b6%84%ed%95%98%eb%8a%94-%eb%b2%95/

한반도와 일본은 환두대도의 형태가 계속 이어지고 발전했지만, 중국대륙은 전쟁과 결투에서의 전략 전술의 다변화로 인해 다양한 무기가 탄생하고 발전하면서 환두대도의 형태는 사장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무당파의 검은 검병 폼멜에 커다란 고리를 달아서 환두대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일본도
일본도

서양의 바스타드검은 대개 13세기경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착하는 것은 15세기이며, 17세기 중반까지 독일과 스위스 등지에서 발전되었고 널리 사용되었다. 바스타드검의 이러한 시대적 구분은 일본도의 발전과정과도 극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도가 중국과 조선에 어필하는 것은 명나라때부터 인데, 1560년 가정연간에 척계광이 기효신서를 집필하면서부터 무서에 일본도의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니 동양에서도 하이브리드 검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5세기경부터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 후 임진왜란을 겪고 1621년에 모원의가 무비지를 집필한다. 이때가 17세기이다.

동양의 이런 시대적 흐름은 서양의 바스타드검의 궤적과도 거의 유사하다. 동서양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하이브리드 검에 열광하는 것은, 검과 도의 발전이 이미 극에 달했고 화약무기의 발달로 인해 전술이 변화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51829922006 8ee392d6f8 z d
무당검
51830644145 09f0067628 z d
무당파 도사와 무당검

검법과 도법, 도술과 검술의 차이, 도와 검의 차이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도는 동양의 하이브리드 검의 대표이며, 서양의 바스타드검의 등장과 유사한 흐름을 갖고 있었다. 시대가 하이브리드 검을 요구했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근대의 무기로 일본도가 선택된 것 이겠지만, 여기서는 검과 도의 구조적 형태에 집중하기로 한다.

유술계열 검술은 결국 도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붙어서 벤다는 사고 자체가 유술기의 이론을 내포하고 있다.

일본 검술계는 도법과 검법이 혼용된 사회였다고 생각되며, 일본의 신음류 같은 검술은 순수한 검법이라기 보다는 도법을 베이스로 한 검술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반대로 현재 일본 스포츠 검도는 검법에 가깝다. 북진일도류 기술이 많이 녹아있는 쌍수 검법으로 보는 것이 옳은 시각일 것 이다.

이전 기사무술 수련에서 스피드를 올리는 7가지 방법
다음 기사현대의 조랑말보다 크지 않은 중세 군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