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평검술은 강서성 용호산(龙虎山) 천사부(天师府)에서 발원했는데, 반원규 도장(潘元圭道长)이 창안하였고, 지금으로부터 거의 300여년의 역사가 있다. 반원규 도장은 청나라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시절에 생존한 사람으로 추측된다. 대충 AD 1700년경 전후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청평검(青萍剑) 이라는 명칭은 봉신연의(封神演义)에 처음 나온다. 중국어에서는 환타지 소설을 홍황류 소설(洪荒流小说)이라고 표기하는데, 대표적인 홍황류 소설로는 봉신연의, 서유기, 산해경까지도 포함한다. 봉신연의에 나오는 천통교주(通天教主)가 소지한 보검이 바로 청평검이다.
봉신연의(封神演义)는 명나라 제12대 황제 목종(穆宗) 융경(隆庆) 만력(万历) 연간에 씌어진 것으로, 융경 연호는 1567~1572의 6년간 사용되었다. 청평검의 시조로 알려진 반원규 도장은 청나라때인 1700년대 인물이므로, 봉신연의가 민간에 회자된 이후에, 환타지 소설속의 보검 이름을 검법이름으로 삼은 것으로 추측된다.
요새 언어로 풀어보자면, 반원규 도사가 검법을 하나 만들어 놓고서는 검술의 이름을 ‘엑스칼리버’,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나르실 검법’, 리니지의 ‘자리체’, ‘아카마나흐’ 라는 식으로 작명한 셈 이다. 청평검법이라는 이름에 뭔가 심오한 뜻이 있거나 검술의 고유기법과 연관되는 의미가 있는게 아니라, 그저 환타지 소설의 마검을 검법이름으로 삼았으니, 산골 무지렁이 도사의 유치함과 귀여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누군가가 검법을 만들고, “이것은 할배검법(디아블로 게임속의 명검)이야~!”라고 말하면 그 얼마나 유치찬란 하겠는가. 그런데 청평검에서는 이런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청평검보(青萍剑谱)》에 의하면, 반원규 도장(潘元圭道长)이 산동성 기수현(沂水县) 이고장(泥古庄) 맹교화(孟教华)에게 전하였다고 한다. 맹교화는 다시 제남 임읍현(临邑县)의 풍희탕(冯希汤)에게 전하였다. 풍희탕도 도교의 도사였다.
풍희탕은 이 검술을 산동성의 양체원(杨棣园)에게 전수하였다. 이때부터 청평검은 도교 문중의 문을 넘어서 속가로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한다.
청나라 중기때에 양체원은 현재의 황화시(黄骅市)인 하북성 염산현(盐山县)의 대한촌(大韩村)에서 청평검을 전하였다. 대한촌은 현재의 황화진(黄骅镇)이다.
황화시는 무술의 고향으로 유명한 창주시에 속해 있으며, 창주시와 동쪽 발해만 바다 사이에 있는 항구도시로써, 최근에 자동차 등의 공업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이때부터 하북성 창주를 중심으로 청평검이 성행하게 되었다.
이당시 양체원이 가르친 제자가 가운학(贾云鹤)이다. 가운학(贾云鹤)은 양체원의 엄격한 가르침 아래 청평검술 6식 365초식을 모두 관통하여 익혔다.
가운학은 다시 두명의 제자를 두었는데, 첫 번째는 그의 동생인 가령천(贾灵泉)이고, 두 번째는 사촌동생인 류문석(刘文石)이다.
다시 가령천(贾灵泉)은 가요정(贾耀亭)에게 전하였고, 유문석은 마진상(马振祥)에게 전한다. 마진상의 자(字)는 운초(云樵)여서, 후일 마운초(马云樵)로 불리기도 한다.
근대 전인에 대한 내용은 이러하다. 풍희탕은 양체원에게 175식을 전하였다.가운학은 365식을 배웠다.
풍희탕이 양체원에게 가르친 175식과 가운학이 배운 365식은 풍격이 상이하여, 지금도 창주 일대의 청평검은 양체원이 전한 양가 청평검이 대표로 알려져 있다. 가운학이 자신이 배운 것을 두배로 늘려서 후대에 전한 것이 아닌가 추측될 뿐 이다.
가운학의 자는 비선(飛仙)이어서, 흔히 비선검협(飛仙剑侠)으로 불리웠다. 현재 그는 황화시에 있는 가씨 종친묘지에 제자인 친동생 가령천과 함께 묻혀있다.
유문석의 제자인 마진상(马振祥)은 청나라 광서제때 상서(尚书)를 호위하여 강남 일대를 순시했는데, 그의 검기는 정순하기로 소문이 났고 강남 강북에 검객으로 족적을 남겼다.
말년에 고향에 돌아와 중국을 주유하며 얻은 것을 사제인 가요정과 공유하고 절차탁마하여 8가지 검법을 제6식에 편입시켰다. 이 과정에서 청평검법은 373식으로 내용이 늘어났다.
가요정(贾耀亭)은 문호를 열고 제자를 많이 받았으며, 천진, 강소, 안휘, 하남 등지에서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가요정의 제자들인 저지광(宁芝光), 범진임(范镇林), 유청봉(刘青峰)은 청평검을 남경국술관(南京国术馆)에 갖고 가서 청평검의 전파와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가발생(贾勃生)은 가요정의 적손으로써, 집안의 학문과 청평검법을 계승하였다. 가발생은 청평검 제8대 전인에 해당하는데, 같은 항렬의 청평검 8대 전인중에는 강용초(姜容樵)가 있다.
강용초는 이경림 장군에게서 무당검과 태극권을 배웠으며, 소림권 태극권 팔괘장 형의권에 두루 통달했고, 1932년 남경중앙국술관의 편집장을 역임했던 20세기 무술의 전설이다. 강용초의 제자로는 사국정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