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무술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몸의 능력과 정신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깊이 있는 수련 체계로 발전해 왔다. 그중 팔괘장은 독특한 원형 움직임과 온몸을 함께 쓰는 것을 강조하는 무술로, 수련 과정과 실전 기술 속에 숨겨진 과학적인 원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팔괘장은 전통 무술이기 때문에 현대 격투기나 MMA 경기와는 직접적으로 맞지 않을 수 있고, 경기에서 실전성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싸움 기술(기격)과 건강 증진(양생)을 동시에 추구하는 동양 무술의 특성상, 우리 몸을 다루는 원리가 이론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는 점은 팔괘장의 큰 장점이다.
이 글에서는 팔괘장이 현대 격투기 및 MMA와 어떤 차이점을 가지며, 이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지 깊이 있게 이야기해 볼 것이다.
1. 주권과 체중 이동의 특화: 움직임의 방향성 차이
팔괘장의 원형 움직임과 체중 이동 특화: 팔괘장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원을 그리며 걷는 ‘주권(走圈)’이라는 독특한 걷기 방식이다. 주권은 끊임없이 몸을 회전시키면서 상대방의 빈틈으로 파고들고 공격을 피하는 전술적인 움직임이다. 동시에 다리 훈련이 몸의 기본이 되는 아주 중요한 훈련법이기도 하다. 주권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원형 운동 같지만, 스포츠 역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온몸의 근육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몸의 협응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고도의 훈련법임을 알 수 있다. ‘권(圈)’에는 ‘우리’라는 의미도 담겨 있어서, 원 위에서 상대를 돌면서 우리 안에 가두는 듯한 효과를 노리는 측면도 있다. 이는 상대를 관리하고 제어하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팔괘장에서 체중 이동은 단순히 몸무게를 옮기는 것이 아니다. 힘을 만들고 전달하며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핵심적인 원리다. 팔괘장은 발바닥 전체를 땅에 붙이고 발가락으로 땅을 움켜쥐는 동작을 통해 지면 반력(땅이 발을 밀어내는 힘)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힘을 발휘한다. 또한, 몸의 무게 중심을 효과적으로 옮기고 관성(움직이던 물체가 계속 움직이려는 성질)을 이용하여 더욱 강력한 힘을 만들어낸다. 몸 전체를 회전시키고 움직이는 과정에서 운동 에너지를 모으고, 이를 순간적으로 발휘하여 공격 기술의 위력을 높인다. 이러한 체중 이동 훈련은 움직임의 효율성과 민첩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동작과 동작 사이의 전환을 쉽고 빠르게 만들며, 방향을 바꿀 때 가속력을 높이고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여 에너지를 아끼고 피로를 줄인다. 이는 또한 균형을 유지하고 안정성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 주권처럼 몸의 중심을 계속해서 이동시키는 운동은 균형 감각을 발달시키고,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에 대처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잡고 안정성을 유지하는 능력을 강화한다.
현대 격투기 및 MMA의 직선적인 움직임과 다양한 공격 기술: 현대 격투기나 MMA는 팔괘장과는 다르게 직선적인 움직임과 다양한 공격 기술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현대 격투기는 주로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선호하며,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대 격투기에서도 기능성 운동(실제 움직임과 유사한 훈련)이 발전하면서 온몸 협응력이나 효율적인 움직임에 대한 중요성을 점점 더 인식하게 되어 팔괘장과의 차이가 줄어들고 있다고도 말한다. 실제로 팔괘장의 끊임없는 원형 움직임과 측면으로 파고드는 전술은 권투 선수의 링 스텝이나 MMA 선수의 케이지 컨트롤(경기장 안에서 상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기술)과 비슷하며, 상대 공격을 흘리며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거나 상대의 사각지대를 활용하는 전법은 현대 격투기의 핵심 요소로도 활용된다.
2. 온몸 협응력 강조 vs. 부위별 집중 단련
팔괘장의 온몸 연결 움직임 강조: 팔괘장은 팔, 다리, 허리, 몸통 등 온몸을 연결해서 움직이는 것을 강조한다. 주권은 몸통, 허리, 골반, 다리, 어깨, 팔 등 거의 모든 근육을 동시에 활성화시키는 복합 운동이다. 회전하는 동작을 유지하려면 코어 근육을 포함한 여러 근육들이 유기적으로 함께 움직여야 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온몸의 근육 사용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특히, 구절경(九節勁)이라는 개념을 통해 몸의 각 부분을 연결해서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힘은 발에서 시작해서 몸통을 거쳐 팔과 손으로 순서대로 전달되며, 각 부분의 움직임이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져야 힘의 손실 없이 효율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 허리는 온몸의 주재(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온몸 협응력을 통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발과 다리는 땅을 단단히 붙잡고 움직임은 부드럽고 빠르며 조화로워야 한다.
현대 격투기 및 MMA의 부위별 근육 단련 및 특정 부위 사용 기술 집중: 반면, 현대 격투기나 MMA는 부위별 근육 단련과 특정 부위를 사용하는 기술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현대 격투기에서도 기능성 운동의 발전으로 온몸 협응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전통적인 훈련 방식에서는 특정 근육군을 강화하고 개별 기술을 연습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팔괘장이 허리, 다리 등 몸 전체를 사용하여 힘을 내고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특정 부위 힘에만 의존하기보다 온몸 협응력을 통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 현대 스포츠 과학의 원리와도 연결된다.
3. 정신 수련의 비중 차이
팔괘장의 정신 수련과 내면의 수련 강조: 팔괘장은 단순히 싸움 기술을 넘어서 정신 수련의 측면도 강조한다. 팔괘장 수련은 스트레스를 풀고, 집중력을 높이며,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동작과 호흡, 생각(의념)에 집중하는 훈련을 통해 정신적인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규칙적인 수련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낮춰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주고, 자신의 몸과 마음 상태를 아는 능력을 향상시켜 스스로를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기여한다. 주사장(珠砂掌)과 같은 훈련은 고도의 집중력과 몸 조절 능력을 요구하며, 생각을 통해 기운을 단전(배꼽 아래 부분)에서 손바닥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상상하는 정신 수련적 요소가 포함된다. 팔괘장은 무술 기술과 도인토납법(호흡과 자세를 통해 몸을 다스리는 법)을 하나로 묶어 내면과 외면을 함께 수련(내외겸수)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신체 건강과 싸움 기술을 함께 연마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현대 격투기 및 MMA의 심리적 측면 중요성 및 비중: 현대 격투기나 MMA 역시 심리적인 부분이 중요하다고 인식하지만, 팔괘장만큼 내면의 수련에 비중을 두지는 않는 경향이 있다. 현대 격투기는 주로 경기의 승패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심리적 강인함, 압박감 관리, 경기 전략 수행 능력 등에 중점을 둔다. 예를 들어, 상대의 반응을 유도하는 페인트 동작이나 심리전은 현대 격투기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팔괘장의 생각 훈련이나 참장공(서서 하는 명상과 같은 훈련)과 같은 깊이 있는 정신 수련은 현대 격투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소는 아니다.
4. 전술적 접근의 차이점
팔괘장의 우회적인 공격 선호 및 상대방 힘 이용: 팔괘장은 상대방의 정면을 피하고 우회적인 공격을 선호한다. “속이는 자가 이기는 자”라는 원칙을 중요한 전술로 삼으며, 상대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공격하거나 속임수(페인트)로 상대를 혼란시키는 기술이 발달했다. 팔괘장의 전법은 게릴라 유격전 전술과 비슷하여, 상대가 물러나면 다가가고, 상대가 밀고 나오면 측면으로 빠지거나 뒤로 물러나 다시 공격한다. 끊임없이 움직여 상대에게 거리와 방향의 혼란을 주고, 정면 공격이 아닌 사선에서 공격하는 전술(避正擊斜)을 사용한다.
또한, 팔괘장은 상대방의 힘을 이용하고 흐름을 파악하여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 곤찬쟁과(滾鑽爭裹)는 팔괘장의 핵심 몸 사용법이자 전략/전술이다. 이는 상대의 공격을 부드럽게 흘려 보내거나 몸을 굴려 피하고(滾),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어 공격하며(鑽), 끊임없이 힘을 겨루고 우위를 점하려 하며(爭), 상대를 얽어매거나 움직임을 제한하여 공격 기회를 만들어내는(裹) 것을 의미한다. 팔괘장은 ‘움직임으로 멈춰 있는 상태를 제압하고,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공격하는 것’을 핵심 전략으로 삼는다.
현대 격투기 및 MMA의 정면 대결 선호 및 자신의 힘 활용: 반면, 현대 격투기나 MMA는 정면 대결을 선호하며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현대 격투기에서도 움직임과 회피, 속이는 전술 등이 중요하게 활용되지만, 전반적인 전술적 접근은 상대방의 힘을 흘려보내기보다는 강한 힘과 속도로 상대를 직접적으로 때리거나 제압하는 데 중점을 둔다. 복싱에서 펀치를 날릴 때 다리에서 허리, 팔로 이어지는 체중 이동을 통해 폭발적인 힘을 내는 원리나 해머던지기 선수가 몸을 회전시키며 관성을 이용하는 원리처럼, 자신의 몸에서 만들어지는 힘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팔괘장과 현대 격투기 및 MMA는 움직임의 방향성, 온몸 협응의 강조점, 정신 수련의 비중, 전술적 접근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팔괘장은 전통 무술로서 현대 경기 체계에 직접 적용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효율적인 몸 운용 원리, 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처 능력, 그리고 정신 수련의 가치는 현대 격투 스포츠 선수들에게도 중요한 생각할 점을 제공할 수 있다. 팔괘장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더욱 활발히 진행된다면, 전통 무술의 가치가 현대 사회에서 더욱 널리 알려지고 새롭게 해석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