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국대륙에 존재하는 검술이 수나라 당나라 시절부터 전수되어 오고 있었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것이다.
현존하는 중국의 무술은 명나라때부터 성립된 것의 후손으로 보는것이 올바른 시각이며, 대부분 청나라 시절에 만들어지고 발전되었다. 현대무술이 근대에 성립된 것은 중국뿐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중국검술의 대표는 무당검법과 청평검법이라고 할 수 있다.
시중에 흔히 회자되는 삼재검법, 태극검법은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졌다.
북양군벌이었던 이경림 장군이 양가 태극권을 배우고 나서 만든것이 태극검이었고, 소림 달마검법을 배운후에 태극검술과 섞어서 삼재검도 별도로 만들었다. 이 모든 과정은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다.
무당검법도 그 실체가 불분명한데, 아마도 중국 북파무술에 흘러다니던 검술들을 모아 집대성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그래서 문헌에 나와있는 검술 기술들이 무당검술에 들어가 있다.
이경림의 무당검술보다 팔괘장 검술이 더 오래되었는데, 팔괘의 검술도 2대 전인 시절에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다. 유덕관 노사가 들여왔다고도 하는데, 유덕관 이전에 정정화 노사도 이미 검술에 고수였다고 하니, 아마도 북파무술에 이런 저런 검술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이경림 장군은 중국 검술의 중흥조로 보아야 마땅하다. 이경림은 무당검의 공식적인 제10대 전인이다.
이경림의 영향하에서 무당검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제자들중의 몇명은 도교 도사가 되어 후일 무당산까지 흘러들어간다.
많은 사람이 모이면 연구가 일어나는 것이고, 양질전환의 법칙에 따라서 질적으로도 향상되기 마련이다. 무당파에서는 검술을 오랫동안 하면서 질적 변화도 일어났다.
무당검의 격검을 요약한 것이 무당8식이다.
무당8식은 아마도 명나라 시절부터 전해 내려오는 검술 초식들을 선별하고 집대성하여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유대유의 검경에 나오는 초식 명칭들도 일부 보인다.
무당8식은 검술투로가 아니다.
실전에서 쓰기 좋은 실용적 기술들을 모아서 요약한 것인데, 이 것을 배우면 실제로 격검이 가능할 수 있다.
무당8식은 마치 펜싱의 빠라드와 유사하다. 펜싱 에페는 빠라드가 9개이고, 사브르는 5개로 보는데, 무당의 빠라드는 8개라고 생각하면 쉽다.
펜싱의 빠라드, 영어로는 패리(Parry)인데, 상대의 검을 막고 제치고 공격하는 중요기술들을 말한다. 현대 펜싱은 빠라드의 구조와 루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펜싱 레슨을 받을때 가장 초기에 배우는 것이고, 가장 나중에도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무당검술은 정으로써 동을 제압하고, 후의 선을 취하므로 선제공격이 아니다. 검을 붙이고 들어가 빈틈을 찾아 공격하며, 검으로 인후부를 봉한다.
검을 붙이고 들어가는 전술이 중요한데, 이 부분은 서양의 바인딩 검술과 통하는 바가 있으며, 현대 태극검술의 찰검의 기원이 되었다.
무당8식은 각각 채세(采洗), 봉폐(封闭), 타말(剁抹), 별체(撇剃), 발삽(撥插), 료벽(撩劈), 제납(提拉), 접소(接扫) 이다.
공격부위에 따라 8가지 기술을 포지셔닝하면 다음과 같다.
무당검의 기술명칭은 우슈검술 공식명칭과 조금 차이가 있다. 같은 기술인데도 표기가 다른 것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104검술연구회에서는 이 기술들을 비교하여 조견표를 만들었다.
흔히 무당의 검술을 ‘무당13검’이라 부르는데, 무당13검은 투로 이름이 아니고 초식의 숫자이다. 13가지 기술이 무당검의 주요 초식이라는 의미이며, 무당검 초식이 13가지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무당검에는 약 34가지 초식이 존재한다.
무당검법을 이해하려면 6가지 파지법과 손의 위치에 대한 정의를 알아야 한다. 이 분류를 기억해야 무당검 기술의 설명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당검법을 잘 모르는 외부인들은 무당검법의 기술 설명을 보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서 ‘태양검(太陽劍)’ 이라는 표현을 보면, ‘떠오르는 태양의 기세와 같이’ 라는 식으로 번역해 놓기 일쑤였다. 이런 분류는 검을 쥔 포지션을 표현한 분류일 뿐, 검세의 기세나 용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무당 실전8식을 표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무당파의 실전8식은 펜싱이나 일본검술과도 해볼 만한 수준의 실용적인 기술이다. 본인의 수련 여부에 따라서 승패가 날 뿐이지, 기술 자체의 우열은 없다고 생각된다.
무당파의 검식은 서양검술에서는 중세의 피오레 검술과 비교적 유사하다. 피오레 검술을 보면 무당의 기술과 비슷함을 많이 느낄 수 있다.
무당검도 팔괘장과 상당히 유사한 전술 전략이 있다.
검은 대부분 나의 토르소 영역을 벗어나지 않으며, 높이 들어 치거나 베지 않는다. 한번 나간 검은 회수하지 않고 다른 동작으로 연환하여 응용된다.
이런 부분들은 펜싱의 에페와 사브르를 합쳐놓은 듯한 형태이다.
본래 서양 펜싱도 에페 검술과 사브르 검술이 따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경기를 위해서 경기규칙으로 만든것에 불과하다. 과거 서양인들의 칼싸움이 에페 형태와 사브르 형태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 아닌것이다.
검은 찌르고 베고 두가지를 다 할 수 있는 것이지, 어느 한쪽만 하는 검술은 없다. 나는 사브르 검술을 했으므로, 실전에서도 허리 아래는 공격하지 않는다는 검사가 있을리 없다, 하지만 사브르 경기는 허리 아래는 공격하지 않으며, 치더라도 점수가 없다.
레이피어검은 결투용으로 고안된 변태스러운 칼 이어서 주로 찌르기만 하는 것이며, 이런 칼이 실전에서는 사용될 수가 없다.
펜싱경기의 변천과정을 보면, 보는 재미를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한 흔적이 보인다. 펜싱은 심판 판정과 보는 재미를 위해서, 칼싸움의 실전성이나 합리적 부분을 상당부분 포기하였다. 최근의 태권도가 전자호구를 도입하면서, 무술스럽지 않은 형태로 진화한 것과 비슷하다.
무당검은 스포츠화 되기 이전의 서양검술과 흡사하다.
최근에 보면 고서를 번역하여 복원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눈에 띈다.
‘검경(劍經)’은 2023년 10월 17일에 출간된 번역서이다.
역자는 정말 골치아픈 책을 꼼꼼하게 번역해 냈다.
한국에서 유대유의 검경을 번역하여 출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히 훌륭한 업적이다. 유대유의 검경(劍經)을 연구자들은 이미 각자의 방법으로 읽고 있었으나, 번역서로 냈다는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이 책은 무술연구자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책 이지만, 번역하면서 가장 많이 나오는 표현이 ‘확실하지 않다’, ‘생각된다’, ‘추측된다’ 이어서, 내용이 조금 애매하다.
‘체(剃)’에 관한 부분을 보자면, ‘체(剃)’를 단순히 ‘빗겨막기’로 번역하였다.
이 책의 본문에도 계속 나오지만, ‘체(剃)’와 ‘곤(滾)’에 관한 부분도 그러하다.
왜 위를 체(剃) 하고, 아래를 곤(滾) 해야 하는가? 왜 체(剃)와 곤(滾)이 좌우를 가르는가?
검경에서는 왜 ‘체(剃)’와 ‘곤(滾)’을 따로 분류하여 말하고 있을까?
무당8식에서는 왜 ‘별체(撇剃)’를 하나의 챕터로 분류하여, 각각 ‘별자(撇刺)’와 ‘체자(剃刺)’로 나누어 묘사하고 있을까?
‘소(掃)’에 대한 부분도 그러하다. ‘소(掃)’는, 이 기술을 훈련하기 위해서 십수가지 단계의 훈련법이 있고, 적용하는 방법들이 있다. 무협지에서 가장 흔하게 나오는 초식중의 하나인 ‘횡소천군(橫掃千軍)’이 바로 ‘소(掃)’라는 초식을 응용한 것이다.
‘횡소천군(橫掃千軍)’ 초식은 팔괘검에도 나오고, 무당검과 청평검에도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본래 두보(杜甫)가 쓴 ‘취행가(醉行歌)’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고, 붓을 들고 글씨를 쓰는 서예쪽에서 먼저 사용된 단어다.
이런 부분들은 명나라때 검경의 시스템에서부터 청나라를 거쳐 현대 중국에 이르기까지 검술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300여년의 시간동안, 검술의 기술은 사라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왔으며, 나름대로 발전하고 재분류되고 검증되어 온 것이다.
검경에서 말하는 ‘체(剃)’는 현대 무당검술에서 ‘체자(剃刺)’로써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검경의 번역자가 자세히 번역하지 못한 ‘체(剃)’의 기술은, 현대 무당검술에서 이미 충분히 설명되고 교습되고 있다.
‘체(剃)’를 이해하려면, 먼저 체가 절검(截劍), 사벽(斜劈), 측벽(側劈), 말검(抹劍)과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야 한다. 옆을 비껴 막으려면 절(截), 말(抹), 벽(劈)이 더 쉽고 흔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체(剃) 라는 기술의 주목적은 빗겨 막는데 있지 않고, 칼을 붙이기 위한 기술이다. 이런 기술은 한가지 기술이 아니라 3-4가지 기법이 동시에 일어나는 복합기술에 해당한다. 그림이나 사진으로 무술을 배운 사람은 체(剃)와 절(截), 벽(劈)을 구별 할 수 없다.
‘체(剃)’는 절(截), 말(抹), 압(押)의 기술이 한꺼번에 섞여 있는 복합기술인데, 실전에서는 유용하지만 검술투로에서는 이것을 분별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현대 경기우슈 검술 표연에서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체(剃)’ 라는 기술 한가지를 사용하려 해도 고려해야 할 포인트가 다음과 같이 많다.
언제 사용할것인가?
어떻게 사용하는가?
칼의 각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각도가 2인치만 빗나가도 다른 기술이 된다.
접촉 시점에서 비비는 시간과 거리는 어느 정도인가?
이 기술이 안 먹혔을 경우, 플랜B와 플랜C는 무엇인가?
다른 기술과 섞어서 쓸 경우, 콤비네이션 조합은 어떻게 되는가?
몸의 신법과 보법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퇴보와 진보, 양쪽에서 체검(剃劍)은 각각 어떻게 다른가?
무게중심의 이동은 어떻게 해야 적절한가?
이 모든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훈련시킬 것인가?
우슈 검술 표연에서는 이런 일련의 포인트들을 구현할 수도 없고, 보면서 심판 판정도 할 수 없으므로, 경기 우슈에서 이런 실전용 기술들은 거의 대부분 사장되었다.
하지만 유대유의 검경에 나오는 검술 기술들은 현대 중국 전통검술에 거의 대부분이 전수되고 있다. 현대 전통검술 유파의 검술을 들여다보면 고대 검술의 유산을 발견할 수 있다. 굳이 고서를 번역하면서 고민할 것이 아니라, 전통 유파의 검술을 제대로 배워보면 쉽게 해결될 일이다.
중국 유명문파의 검술을 제대로 배운 제자라면, 검경을 읽으면서 특별히 어려운 것이 없기 마련이다. 검경에서 설명하는 것 들이 대부분 현대의 전통검술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서울팔괘장연구회와 백사검술연구회는 2023년 하반기부터 2024년 1/4분기까지 무당8식에 대한 집중적인 지도와 연습을 했었다. 수백년전의 고대검술은 맥이 끊어진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 전수되고 수련되고 있다. 104검술연구회의 검술은 중국 무당산과 창저우, 북경 등에서 직접 배워 온 것이다.
그런데 왜 고서를 번역하고 복원하는 사람들은, 정확하게 내려오고 있는 검술의 전수맥을 무시한 채, 각자의 생각대로 재해석을 하고 있는것인가? 왜 검술의 기술이 현재는 마치 실전되어 없는듯이 표현하고 발언하는가?
올바른 선생을 찾아가서 배우면 한달도 안되어 이해하고 해결될 일을, 왜 혼자서 맨땅에 헤딩하며 궁리하면서 십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것일까?
최근 고대 검술서를 복원하거나 재해석 하는 사람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행위이고, 합리적으로 정상적인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고교시절에 한문 선생님이 첫 수업시간에 칠판에 쓰셨던 문장을 떠올린다.
自知는 晩知고, 補知는 早知라.
이 문장은 조선시대에 김삿갓이 말했다고 한다.
의미는 “혼자 알려고 하면 늦게 깨우칠 것이요, 남의 도움을 받으면 빨리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뜻이다.
뉴턴물리학이나 아인쉬타인을 전혀 공부해 보지 않은 사람이, 혼자서 나름대로 열역학 법칙이나 상대성이론을 만들겠다고 혼자 궁리해봐야 결론은 만시지탄이다. 아프면 의사에게 가야 하듯이, 모르면 알만한 선생을 찾아가서 배우는 것이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