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5일부터 18일까지 보고르에서 열린 제15차 인도네시아 펜칵실라트협회(IPSI) 전국 회의는 “인도네시아의 펜칵 실라트는 올림픽을 목표로 한다”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태권도와 가라테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 전의 태권도와 가라데가 그랬듯이 먼 길을 걸어야 하지만 큰 꿈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무술은 사람들의 역사, 인물, 문화 및 예술을 보여주는 국가 유산이기 때문에 펜칵 실라트를 올림픽 스포츠로 포함시키려는 시도는 모든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스포츠가 아닌 국가와 민족의 특성, 문화 및 가치를 홍보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IPSI 프라보우 아지난토 총 회장은 태권도와 가라테와 같은 올림픽에서 경쟁하는 다른 스포츠를 모방하려는 의지와 함께 모든 당사자의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태권도는 올림픽 종목이 되기 전 한국 문화에 깊이 뿌리내렸다. 태권도라는 명칭은 1959년 대한태권도협회(KTA)가 설립되면서 만들어졌다.따라서 KTA는 1948년 5월 18일에 설립된 IPSI보다 젊다.
인도네시아가 독립하기 훨씬 이전에 여러 펜칵 실라트 훈련 시설이 인도네시아에 설립되었으며, 한국은 1972년 국기원을 설립하였다.
1973년 국기원과 KTA는 세계태권도연맹(WTF)을 결성하고 서울에서 첫 국제대회를 개최했다. 이후 한국은 태권도를 올림픽에 포함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73년 AAU(American Athletic Union)에 가입하여 태권도와 WTF에 대한 국제 표준을 결정했다. WTF는 이후 2017년 WT(세계태권도)로 명칭을 변경하여 국제사회에서 포괄적인 조직이 되었다.
실라트는 인기가 더 많다.
1974년 WTF는 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GAISF)에 가입하여 올림픽 당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국제 스포츠 연맹 간의 협력을 촉진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5년 만에 태권도를 인정했다.
태권도는 1981년 GAISF 경기에 출전한 후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마드리드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됐다. 이 기간 동안 태권도는 각종 유수의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인정받았다.
태권도와 마찬가지로 가라테도 현재의 인기를 얻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했다. 1970년대부터 가라테가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가라테가 올림픽에서 경쟁하게 된 것은 2020년이었다. 하지만 2024년 파리올림픽의 참가종목은 아니다.
세계 가라테 연맹(WKF)은 일본 무술의 경기 규칙을 국제 표준과 일치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이 스포츠가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에 이를 단순화하기로 했다. 사실 가라테는 대중 문화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척 노리스와 제이든 스미드와 같은 다양한 배우들은 ‘카라테 키드The Karate Kid’와 ‘코브라 카이Cobra Kai’와 같은 여러 성공적인 영화와 시리즈를 통해 가라테를 대중화했다.
수세기 동안 수행된 펜칵 실라트와 비교할 때 가라테는 20세기 초에야 일본에서 인기를 얻었다. 인도네시아 무술과 마찬가지로 가라테의 진정한 가치는 무술 이상이다. 그것은 수련자들에게 삶의 일부가 되었다.
올림픽 종목이 되는 것은 태권도와 가라테를 특히 어린이와 젊은이들 사이에서 더욱 대중적으로 만들었다. 대회를 많이 개최할수록 선수 육성이 수월해지고 국가적 자부심을 강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