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왜 전통무술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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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인정받는 전통무술은 씨름, 국궁, 택견 밖에 없다. 전통무술의 개념은 3대 이상의 명확한 사승관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개념에 맞는 무술은 위 3개 밖에 없다.

씨름은 영어로는 벨트레슬링이며 유라시아 대륙에 널리 퍼져있는 유인원 시절부터 있었던 격투기이다. 씨름은 고구려 무용총에도 벽화가 남아있으며 일본의 스모와도 연관성이 있다. 씨름은 현대 스포츠의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무술이라기보다는 민속놀이에 가까운 느낌이다.

씨름은 샅바를 잡고 상대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중심을 잡는 능력이 극단적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유도선수들도 씨름을 배우기도 하며 옛날 김두한 시대의 싸움꾼들은 씨름선수 출신이 많다.

우리가 무술이라고 하면, UFC에 나가서 이기고 무에타이 선수와 대등하게 싸우는 것을 상상한다. 하지만 UFC는 경기화된 격투기라서 규정이 있고 심판이 있고 링과 쿠션 같은 선수를 보호할 장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길거리 싸움은 심판과 규정이 없고 상황을 빨리 끝내야 해서 원투 스트레이트로 타격을 하고 카프킥을 하며 점수를 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길거리 싸움에서 가장 좋은 필살기는 상대를 밀어 넘어뜨리는 것이다. 세게 넘어뜨리면 땅이나 벽이 나를 대신해 상대에게 충격을 주게 된다. 태극권의 주요 기술인 붕리제안은 상대의 중심을 잃게 하여 밀어 넘어뜨리는 기술이다. 타격으로 손상을 주려는 목적이 아니다.

한국에도 전통무술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중국과 일본에 많은 무술이 있으니, 한국에도 있어야 한다고 보는 착시 때문이다.

근대국가에는 무술이 없는 것이 정상이다. 중국과 일본이 비정상적으로 무술이 계승되고 있다. 유럽의 박물관에 가면 많은 무기와 무구들이 있는데, 정작 유럽의 전통무술은 남아있지 않으며 지금 복원되고 있다.

사람들은 ‘유럽과 아랍에 많은 전쟁이 있었는데 왜 무술이 남아있지 않을까?’라고 궁금해한다. 그러나 없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역사적인 변화이다.

무술이란 창칼을 드는 전투기술이다. 화약무기의 발달로 도검의 중요성이 떨어지고 개인간 결투에서도 총을 사용하게 되자 무술은 자연스럽게 쓸모가 없어지고 사라진 것이다.

조선에서도 『무예도보통지』같은 무술서적이 남아있고 무술을 훈련한 전통이 있었겠지만, 화약 무기의 도입으로 냉병기를 사용하는 무술은 사라진 것이다. 유럽과 조선에서도 같은 이유로 무술이 사라졌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화약무기가 도입되어서 무술이 사라져야 했을 텐데 왜 계승되고 있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이것은 전혀 다른 역사적 조건 때문에 우연스럽게 무술이 남게 된 것이다.

이 역사적 조건이란, 다음과 같다.

1. 지방분권 및 봉건제
2. 중앙권력의 약화로 인한 치안의 부재
3. 서양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한 민족주의의 발흥

일본의 에도시대는 봉건제로 지방분권의 성격이 강했으며 아편전쟁 이후의 중국은 중앙권력이 붕괴하는 시점이었다. 이 시기의 무술은 단순히 격투기나 전투기술이 아닌 국수를 상징하게 되었다. 동도서기라는 말이 있듯이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자국의 문화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생기고 무술은 사라진 국체를 융성하게 하는 도구로서 주목을 받았다.

OIG즉 무술이 전통문화와 결합하면서 이데올로기화된 것이다. 무술은 격투기가 아니라 ‘격투기+전통이데올로기’의 형태로 전수되어 살아남았다. 태극권 등의 전통무술이 유독 건강을 강조하는 이유가 보건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기서 ‘건강’은 국가의 강함까지 이어지는 국체의 성격을 가진다. 서양제국주의에 맞서 반식민지 상태에 빠진 중국은 개인이 건강하면 국가도 건강해진다는 이념적인 건강함을 말하는 것이다. 상대를 제압하는 단순한 격투기가 아니라 교회처럼 제도화된 이념이 되는 것이다.

위의 조건에 맞추어보면 조선 후기의 남아있던 무술들은 중국과 일본처럼 이데올로기화 될 수 있었겠지만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탓에 주체적으로 무술이 변화할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지금 태권도와 같은 한국의 무술들은 중국과 일본의 무술들 못지않게 이념화되어 있다. 하지만 그 이념화되는 시기는 1960년대이다. 해방 후 한국전쟁으로 여력이 없다가 1960년대가 되면서 무술들이 중국과 일본처럼 같은 방향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달라서 한국의 무술들은 민족주의와 결합을 한다.

무술로서 태권도의 성격은 ‘격투기+민족주의+유교’이다. 무술이 체계화되면 이론화 작업을 하게 되며 당연히 그 사회의 사상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유럽에서도 역사적 조건이 맞아 무술이 계승되었다면 기독교 스타일로 이념화되고 절이 아닌 교회에서 운동하고 있을 것이다.

크로스핏이 바로 이념화된 운동이다. 크로스핏의 체육관을 박스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교회의 다른 말이다. 매일 기도를 하듯이 ‘오늘의 운동’을 하며 SNS에 고백하며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용서를 받는다. 크로스핏 박스에서 다른 사람의 운동을 지켜보며 응원하는 모습은 부흥회인 것이다. 오늘 운동을 하게 되면 비만과 과식에서 용서받는다는, 기독교가 세속화된 구조이다.

태권도가 유교와 결합을 했다는 것은 지금 태권도장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프로그램이 호신술이 아니라 인성교육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선비와 서원에서 했던 프로그램을 태권도장 사범들이 하고 있다.

한국의 1960년대는 중국과 일본의 19세기 후반처럼 무술의 탄생기였다. 한국의 모든 무술은 이 시기에 탄생하고 발전한다. 전통무술이 아닌 현대무술이었고 1960년대라는 시대 상황은 무술에서 민족주의와 유교적인 가치를 강조하게 된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이념화된 무술의 탄생이 50년은 늦었지만 이후의 발달과정은 중국, 일본과 같다.

중국과 일본에 전통무술이 있으니, 한국에도 있겠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숨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역사의 발전단계에서 무술은 사라지는 것이 정상이며 한국도 정상적으로 무술이 섭 종료를 한 것이다.

1960년대 탄생한 무술의 특징은 민족주의적이다. 한국은 중국, 일본과 다른 문화적 특성이 있으니, 이것과 어울리는 전통무술이 어디선가 비밀리에 전수되고 있을 것이며 나만이 그 무술을 찾아내 전수자가 되겠다는 잘못된 의제 설정은 여러 젊은이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으며 망상과 환청에 시달리게 했다.

[ 3줄 요약 ]

1. 한국에는 중국, 일본과 다르게 전통무술이 없는데 그게 더 정상적이다.
2. 1960년대에 발생한 태권도를 비롯한 한국무술들이 더 훌륭하다.
3. ITF태권도에서 발전한 문무빈태권도가 제일 훌륭하며 진정한 한국무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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