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무술의 맥, 유술벨트와 타격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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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무술의 맥, 유술벨트와 타격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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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 많은 무술이 있지만, 맨손 권법만 놓고 본다면 크게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유술계 무술이고, 둘째는 타격계 무술이다.​

그런데 세계지도에 유술계 무술과 타격계 무술을 마킹해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유술계 무술은 유라시아 초원을 중심으로 실크로드 축에 퍼져 있으며, 타격계 무술은 바닷길인 해상 실크로드 동선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이제 왜 그럴까 하는 질문에 해답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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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오래전부터 씨름을 즐겨왔다. 한국 전통무예는 씨름, 택견, 국궁밖에 남아있지 않은데, 무기인 국궁을 빼면 신기하게도 나머지 두가지는 모두 유술계 무술이다.

​택견을 타격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본래 ’탁견은 유술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유술기와 타격이 적절히 섞여 있다. 최근의 택견경기도 보호구 없이 시합을 하는데도 다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타격발질이 아니라 밀어내는 발질을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발로 하는 유도라고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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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송덕기옹은 ‘한국고유무술 택견(전통무술 택견)”에서 택견이 씨름의 형태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언급하였다. 서로 붙잡고 씨름을 하다가, 떨어지게 되면 택견과 흡사한 동작이 나오게 되며, 택견은 유술적인 요소가 주가 된다는 것 이었다.

​초원 실크로드를 따라서 대표적인 무술들을 마킹해 보면, 실제로 유술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씨름, 중국의 솔, 몽골 씨름 부흐, 우즈베키스탄의 크라슈, 장사나티, 우크라이나의 코작, 터키 씨름 야울귀레쉬, 이란의 코슈티 등이 모두 유술이다.

 

유술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중심을 뺏아 넘어뜨리는 무술’ 이라고 할 수 있다. 의복과 경기규칙이 달라지면서 형태가 조금 변화할 뿐, 세상 모든 유술의 원리는 같다. 유술은 기울이기와 중심뺏기가 근본이다.

그런데 유술은 왜 북방에서 발전했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말해지는데, 모두 다 원인의 한가지가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첫 번째 이유는 초원의 유목민족들은 어려서부터 가축을 손으로 제압하는 것을 습득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양이나 염소의 털을 깎고, 젖을 짜고, 도살을 할 때, 짐승을 힘과 기술로 제압하여 관절을 꺾은후 꼼짝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관절꺾는 기술이 유술기의 바탕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남방 민족들이라고 해서 짐승을 잡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북방 유목민족만큼 많이 하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관절을 꺾고 제압하는 것이 훈련이 된 사람은 유술기술을 쓸 때 조금이라도 더 유리할 것이다.

​최근에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 남자들은 양털깎기 일자리에 많이 간다. 양털을 깎으려면 날뛰는 양을 잡아서 꼼짝못하게 해 놓고 털을 깎는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게 생각처럼 쉬운게 아니어서, 잘못하면 양을 다치게 할 수도 있고, 도망가 버릴수도 있다. 어려서부터 이런 훈련이 습관이 된 사람은 관절기를 쓸 때 능숙할 수 밖에 없다.

두 번째는 기후와 의복의 문제다. 무술의 기술은 기후와 복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도복에 옷깃이 없다면, 유도기술의 70% 이상은 쓸 수 없을 것이다.

​북방초원은 워낙 추워서 옷이 두껍고, 두꺼운 옷은 타격의 충격을 반감한다. 그래서 남방 권법 스타일처럼 손기술 공격보다는, 강한 충격을 위해 발차기가 보다 효과적 일 수밖에 없다. 북파 권법이 발차기가 많은 이유다.

​옷이 두껍고 잡을곳이 많으니, 손목관절보다는 견관절과 고관절을 봉쇄하는 기술이 더 각광받게 된다. 그래서 씨름이나 레슬링 같은 기술이 발달했다. 이것이 유도를 북방 무술로 봐야 하는 이유다. 유술은 일본에서 갑옷입은 무사를 상대하기 위해서 발달했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 말은 틀린말은 아니지만 갑옷보다는 두꺼운 의복까지 포함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갑옷을 입지 않은 상대와 싸워야 했던 북방 초원에서 유술기가 발달한 것을 보면, 갑옷이 유술의 1차 발생원인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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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북파무술, 태극권, 형의권, 팔괘장에는 중국씨름인 솔교의 기술이 많이 들어있다. 솔교과 몽골씨름은 매우 비슷하다.

​특히 중국무술 팔괘장이나 태극권에는 상대를 붙잡고 넘어뜨리는 기술들이 많다. 따라서 태극권과 팔괘장은 북파무술이며 씨름과 유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태극권과 팔괘장을 타격기 무술로만 이해하면 70%의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쓸 수 없게 된다.

​솔교와 씨름, 스모, 태극권, 팔괘장이 모두 중앙아시아 유술벨트의 영향하에 있다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현상이다.

중국 남부의 무술을 총칭하는 단어는 ’남권(南拳)‘이다. 북방에서 유술기가 주 였던 것과 달리, 남방에서는 전통적으로 타격기가 우세했다.

인도 칼리리파야투, 무에타이, 시라트, 중국 남권인 백학권, 오조권, 홍권, 영춘권, 채리불가권 등등은 대표적인 타격기 무술들이다. 최근에 동아시아의 무술과 교류하면서 동남아 무술에도 관절기가 대거 유입되었지만, 본래 동남아 무술의 기본은 타격이었다. 남방 무술은 주먹과 팔꿈치, 무릎을 사용하는 기법이 주류를 이룬다.

왜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지역에서는 타격기 무술이 주류였을까? 이것도 역시 기후와 복장, 그리고 환경 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중국 남부는 매우 습하고 무덥다. 일년 내내 반팔 티셔츠이거나 아예 웃통을 벗고 산다. 기온이 높은데다 습하다보니 항상 몸은 땀으로 젖어 있다. 손으로 잡을 의복이 없으며, 신체의 일부를 잡더라도 피부에 맺힌 땀 때문에 미끄러지기 일쑤이다. 중국 남부 광동성 일대의 남성들은 여름에 아예 웃통을 벗고 다닌다. 웃통을 벗고서 시내를 활보하고, 버스를 타며, 가게에서 장사하고, 사람들을 만난다. 광동성에서는 이것이 무례한 것이거나 경범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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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오래전에 광동성 무술협회를 방문하여, 협회 임원들과 대화하고 기술을 견식할 기회가 있었다. 그날 기온은 42도정도 되었으며 에어콘이 없는 곳에서 기술을 경험해야 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매우 습한 날씨였고, 서로 땀에 젖어있는 상태에서 손목이나 팔을 잡는 것은 이미 무의미 했다. 상대를 잡아봐도 물에 젖은 개구리처럼 그냥 쓱~ 빠져버렸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레슬링처럼 태클로 들어가서 몸의 대관절을 제압하는 기술밖에 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상의가 탈의된 상태에서는 몸통을 잡아도 미끄러웠고, 마치 터키의 오일레슬링 같은 상태가 되었다. 그제서야 남권의 본질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북파 무술의 기술보다는 단교협마 스탠스에서의 남권의 타격이 훨씬 유리했던 것이다.

​그래서 남권(南拳)의 공식 도복도 아예 민소매이다. 웃통벗고 경기에 나오는 것은 상당히 민망하니, 그나마 입은 것이 민소매 상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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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후조건하에서는 관절기술이나 유술기의 사용은 크게 제한될 수 밖에 없다. 남권과 동남아 무술은 현지 환경에 적합하도록 발달된 것이며, 중국 남부와 동남아 지역에서는 북파무술보다 남권이 비교 우위에 있게 된다. 소림무술이 남쪽에 내려가서 형성되었다는 홍가권도 타격을 주로 하여 재구성 되어 있다.

남권의 탄생배경에는 수로(水路)가 많고, 배 위에서 싸울일이 많아서 타격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형태가 되었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것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서 시작한 이야기이다. 범선도 아닌 좁은 보트 위에서 싸울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정리하자면, 남권의 발생에는 환경 요인이 원인 변수 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무술의 발달에는 기후와 생활환경, 의복 등등이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이것이 북쪽에서는 유술이 발달하고, 남쪽에서는 타격기가 발달한 이유가 되었다.

​북방계에 속하는 우리 한민족은 전통적으로 유술이 강세였고, 오키나와 카라테는 중국 복건성과 광동성에서 전해졌으므로, 남권의 후계자이다. 북방무술과 남방무술이 부딪혀서 용광로처럼 녹아내린 곳이 바로 한반도다. 일본의 대동류와 아이키도는 북방 유술계 무술이고, 오키나와 카라테는 중국 남권이 기원이다. 이 두가지 무술은 한반도에 들어와서 타격이 포함된 한국 합기도와 태권도로 재편성 되었다. 이렇듯 한국에는 북쪽을 기원으로 하는 유술계 무술과, 남쪽에서 비롯한 타격계 무술이 공존하고 있다.

북방과 남방의 무술이 모두 혼재하는 땅이 한반도이며, 이땅의 지정학적 위치는 우리가 아시아의 무술의 중심지가 되어야 함을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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