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무술가의 신기한 시범들, 발력이나 합기 시범을 보면 인생의 오의를 깨달은 사람들,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신비한 기술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디오가 없던 시절(사진 찍기도 어려운 시절은 더할 나위도 없고) 무술 시범이 열리는 곳에 어렵사리 가거나 해당 사범에게 입문해야지만 경험할 수 있는 기술이었던 것이죠.
정보가 부족했던 시절, 정보의 희귀성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었습니다. 대동류합기유술의 사가와 요키유시는 합기의 비밀이 알려질까 봐 생전에 비디오를 찍지 않았고 남은 사진도 거의 없습니다. 반대로 이것은 합기의 요령은 말로 전할 수가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무슨 일만 생기면 꺼내드는 스마트폰, 사진과 동영상을 너무 쉽게 찍을 수 있고 유튜브에는 옛날과는 다르게 자신의 비결을 알려주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달인의 노하우, 합기의 비결, 발경의 비밀을 알기 위해 사람들은 해당 동영상을 수백, 수천 번 돌려보며 요령을 찾습니다. 이것은 매우 성공적이기도 했지만 실패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명피아니스트의 동영상을 수천 번봐도 그 실력은 내 것이 아닌 것이 달인이 비결을 가지게 된 것은 오랜 신체적인 수련을 통해서였던 것이지 깨달음을 얻어 순식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 말이죠.
20세기 중반 무술계에는 새로운 바람이 일어났습니다. 무술의 원리를 찾아서 그 원리를 깨달으면 굳이 힘들게 수련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흐름이었죠. 이것이 웃기는 것이 피아니스트가 다른 작곡가의 노래를 쉽게 칠 수 있는 것은 어떤 노래라도 칠 수 있도록 훈련한 신체적인 능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작곡가의 비결을 알았다고 초보자가 바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신체능력과 기본기가 되어있는 사람은 레전드급 무술가의 동영상을 보면 원리를 이해할 수 있고 어렵지 않게 따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보자는 아니죠.
무술의 원리만을 추출하여 세미나식으로 전하여 무술의 비결을 깨닫게 한다는 이 시도는 좋아요. 하지만 마스터스 클래스 이상에서만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세기 중반이후로 무술의 원리만을 뽑아서 가르치는 사람이 일본을 중심으로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대동류합기유술과 마찬가지로 시범과 세미나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초창기 시도 중 하나는 『근육을 넘어선 격투기』라는 책입니다. 1990년 복창당에서 출간되었는데 이 책의 소개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상대를 쓰러트리기 위해 필요한 힘은 근력이 아니다. 기공, 발경, 호흡법, 뇌성(*의권의 발성법)…무술, 격투기에는 근육을 넘어선 힘에 대한 비전이 다수 존재한다. 본서는 각 유파에 전해지는 그 비전들을 집대성, 일거에 공개한다.”
이런 흐름에 일조한 사람이 지금은 고인이 된 『권아』의 저자, 마츠다 류우이치입니다. 무술연구가로 유명한 이 사람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중국무술사』라는 책을 써서 중국어로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훌륭한 연구가이지만, 중국무술을 너무 신비화한 장본인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중국무술은 전혀 신비한 구석이 없습니다. 다 물리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무술의 원리로 신체를 조율하는 기법을 알기만 하면 당신은 순식간에 달인! 이라는 식으로 세미나를 하고 책을 쓰는 사람들이 일본에는 넘쳐나고 한국에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전혀 나쁜 것은 아니고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구분을 해야 하는 것은 이런 시도들이 무술 그 자체는 아니고 ‘무술에 기반을 둔 피트니스’라는 점이죠. 그러니까 분야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이 무술피트니스들은 달인의 기술들을 쓰기 위해 신체적인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선전하는데 이것이 바로 피트니스죠. 기술이 아니라 몸의 원리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전하는 것은 ‘피트니스’입니다. 무술이 아니라요. 세미나와 시범을 중심으로 모임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기술, 비결을 배운다 해도 신체적인 기반이 없는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내가 부족한가?’는 생각으로 이런 세미나와 코치들에게 빠져들게 됩니다.
이것은 마술을 보는 것과 같아 배우면 배울수록 이해하기 힘들게 됩니다. 무술의 피트니스라는 목표는 좋지만 결과적으로 무술수련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만 양산하게 됩니다. 비결을 알면 달인이 되는데 누가 힘들게 수련을 할까요?
한국에도 팬이 많은 히노 아키라
무술의 피트니스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입니다. 무술이 다른 영역으로 확장되는 좋은 계기이고 무술의 피트니스화를 보급하는 일본의 사범들도 진보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 고무술을 바탕으로 무술피트니스를 가르치는 코노 요시노리
그런데 150년 전에 무술의 피트니스화를 마친 중국무술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위의 유명한 일본인 사람들, 히노 아키라, 코노 요시노리, 다카오카 히데오 등이 하는 시범들을 다 합친 것만큼 보다 더 큰, 그들이 참고서와 해답집으로 삼아 시간날 때마다 들여다보는 무술, 바로 태극권입니다.
무술인가? 피트니스인가? 태극권입니다. 무술의 원리들, 달인의 기술들을 쓰기 위한 신체적 조건들을 훈련하기 위한 방법론이 바로 태극권입니다. 태극권의 투로 안에는 위의 무술 피트니스를 위해 노력하는 일본인 사범들의 비결이나 세미나 내용이 다 들어있습니다. 24식 태극권같은 기초부터 5파 태극권의 고급단계까지 150년 동안 쌓은 노하우며 서적들, 동영상들이 모두 남아있습니다.
물론, 현대의 태극권은 경기용 무술이나 실전을 위한 무술이 아닙니다. 전통무술과 현대격투기의 서로 다른 영역을 착각하면 안됩니다. 하지만 피트니스이며 원론적인 무술이라는 것을 알고 접근하면 어떤 스포츠를 하는 사람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