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散打: 중국 전통무술과 현대 격투기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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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散打: 중국 전통무술과 현대 격투기의 조화

산타의 본질

산타 散打는 중국전통무술을 기반으로 현대 스포츠의 요소를 융합하여 탄생한 격투기 경기이다. 따라서 산타를 단순히 전통무술의 일부로 보거나, 완전히 새로운 격투기로만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으며,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散은 ‘흩어질 산’인데 형식이 없다는 뜻이 있어 산타는 자유격투라는 의미이다. 권투와 무에타이의 영향을 받은 것은 확실하지만 러시아 삼보와의 관련은 부족하다. 사회주의 국가들끼리 교류가 많아 개연성은 충분히 있지만 산타의 발전시기에 러시아 삼보 또한 발전 도상에 있었으며 수 많은 중국무술가들이 러시아에 교습을 했다는 증거를 보면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은 있다.

19세기 말~1949년: 중국의 반식민지 상태에서 무술 부흥의 움직임

아편 전쟁의 포성이 멎기도 전에 중국 사회는 서구 열강의 거센 파도에 휩쓸렸다. 서양 문물의 급격한 유입은 자급자족적인 농업 경제를 기반으로 한 전통 사회 질서를 무너뜨렸고, 중국 전통 무술 역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서양 스포츠의 체계적인 훈련 방식, 과학적인 이론, 공정한 경기 규칙 등은 전통 무술의 비체계성, 주먹구구식 훈련, 비합리적인 요소와 대비되며 변화를 요구했다.

중국의 지식인과 민족주의자들은 ‘강국강종(強國強種)’의 기치를 내걸고 민족의 힘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운동을 전개했다. 무술은 단순한 개인의 기예 연마를 넘어 민족의 정신을 고양하고 국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재조명되었고, 전통 무술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현대적인 스포츠 형태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본격화되었다.

1910년, 곽원갑(霍元甲)과 진공철(陳公哲) 등은 상하이에서 정무체육회(精武體育會)를 설립했다. 정무체육회는 무술을 제창하고 스포츠를 연구하며 강한 국가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민족의식 고취, 체력 증진, 사회 교육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사회 운동을 전개했다. 서양 스포츠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체조, 유예, 병사 등 다양한 종목을 도입하고 현대적인 교육 시스템을 구축했다. 정무체육회는 중국 무술의 근대화에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이후 무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27년, 장지강(張之江)은 남경에 중앙국술관(中央國術館)을 설립했다. 중앙국술관은 무술을 ‘국술(國術)’로 격상시키고 스포츠, 국기, 국가 등과 동일한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여 근대 무술이 경기 스포츠로 진입하는 서막을 열었다. 장지강은 서양 스포츠의 선진 이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무술의 훈련 방식, 교육 방식, 경기 방식을 혁신하고자 노력했다. 중앙국술관은 근대적인 무술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우수 인재를 양성하며 중국 무술의 과학화와 체계화에 기여했다.

중앙국술관은 국술고시(國術考試), 국술유예대회(國術遊藝大會) 등을 개최하여 체계적인 경기 규칙을 만들고 적용하려는 시도를 전개했다. 체급 구분, 승패 판정 기준, 반칙 규정 등 근대 스포츠의 요소를 도입하고 듀얼 토너먼트 제도, 3판 2선승제 등을 적용하여 경기 규칙을 규범화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엉성한 규칙, 짐승 격투장을 연상시키는 경기장 분위기, 안전 장비 미비 등 한계도 분명했다. 무술 고유의 정신과 가치를 살리면서도 현대 스포츠의 요소를 어떻게 조화롭게 융합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중앙국술관은 근대 무술의 체계화와 스포츠화를 목표로 삼았으며, 1928년 국술고시에서 산타의 초기 형태인 ‘산수(散手)’ 경기가 포함되었다. 이 시기의 산수 경기는 현대 산타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무술 기술을 겨루는 대항 형식이라는 점에서 현대 산타의 직접적인 기원으로 볼 수 있다.

1949년~1978년: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의 시련과 부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면서 중국 사회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체제를 맞이했다. 스포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스포츠는 ‘인민의 건강’에 기여하고 사회주의 건설에 이바지하는 수단으로 장려되었고, 무술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태극권은 피트니스화 되고 간화태극권이 만들어졌다,

1952년, 민족형태의 체육운동위원회를 설립하고 무술을 보급 종목으로 선정했다. 1953년에는 초대 전국민족형식체육공연과 경기대회를 개최하여 산수散手가 공연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무술은 구시대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새로운 스포츠 형태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다. 전국민족형식체육공연과 경기대회에서 ‘산수散手’가 공연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이 대회를 통해 ‘산수’는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현대 산타의 기술 체계와 경기 형식을 정립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산타는 처음에는 공연 종목이었다.

1966년, 문화 대혁명(文化大革命)이 발발하면서 중국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무술은 ‘봉건적인 잔재’로 취급받으며 심각한 탄압을 받았다. 무술 훈련, 경기 활동이 중단되고 경기 제도들이 폐지되었으며, 무술은 양극화의 길을 걸었다. 이념만을 강조하고 전통적인 가치를 부정하는 극단적인 풍조 속에서 무술은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

1970년대 초, 덩샤오핑(鄧小平) 등 실용주의 노선의 지도자들이 복권하면서 무술은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1972년에는 전국무술공연대회를 개최하며 무술 부흥의 움직임을 보였고, 1978년에는 스포츠학 통용 교재에 산타를 소개함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문화 대혁명의 광풍이 휩쓸고 간 폐허 속에서, 산타는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권투도 현대 중국에 들어서 금지되었다.

중국에서 권투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920~30년대 중화민국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 권투는 대학과 체육 기관을 중심으로 정식 스포츠로 자리 잡으며 점차 대중화되었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하이와 홍콩에서는 프로 권투 경기가 활발하게 열렸고, 중국 출신 선수들이 국제 대회에도 출전하며 세계 무대에서의 경쟁력을 키워 나갔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에도 권투는 한동안 유지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중반부터 공산당은 권투를 “서구의 폭력적인 스포츠”로 규정하며 점차 규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959년, 정부는 권투를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권투를 자본주의적이고 폭력적인 경기로 간주했다. 대신 체조, 탁구, 배구와 같이 집단적이고 사회주의 이념에 부합하는 스포츠를 장려했다. 특히 마오쩌둥의 “건강한 신체보다 중요한 것은 이념과 집단정신”이라는 체육 정책이 이러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이후 약 27년간 중국에서 권투 경기는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개혁개방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스포츠 정책도 변화하였고, 1986년 중국 복싱협회(CBA)가 설립되면서 권투는 다시 합법화되었다. 이를 계기로 중국 선수들은 국제 무대에 복귀하였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첫 올림픽 복싱 메달을 획득했다. 산타 경기는 경직된 사회주의 체제가 개혁개방을 하면서 다시 스포츠로서 재정립되기 시작했다.

1979년 현대 산타의 시작

1979년, 중국은 개혁개방(改革開放) 정책을 채택하며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스포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엘리트 스포츠 육성을 통해 국위를 선양하고 스포츠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산타는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체계적인 발전과 국제화를 추진하며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돋움하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현대적인 산타의 가장 직접적인 시작점을 꼽으라면 1979년 국가체육위원회의 시범 지역 선정 및 연구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79년, 국가체육위원회는 절강성, 북경, 우한의 3개 기관을 산타 시범 지역으로 선정하고 집중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이 시기부터 산타는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 경기 규칙, 심판 양성 시스템 등을 갖춘 현대적인 스포츠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82년 최초의 ‘무술산수경기규칙’을 제정하여 경기 규칙을 명확화하고, 현대적인 산타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1989년에는 산타를 국가체육위원회 정식 종목으로 인정했다. 1989년 제1회 전국무술산수선수권대회를 개최하고 선수 및 심판 양성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엘리트 스포츠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1990년 국가체육위원회에서 무술산수경기규칙을 발표하고 심판, 선수 등급제도 실시 및 국가급 심판을 등록시키며 기반을 다졌다. 현대적인 산타의 가장 직접적인 시작점을 꼽으라면 1979년 국가체육위원회의 시범 지역 선정 및 연구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부터 산타는 체계적인 스포츠로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현대 산타의 기술 체계, 경기 규칙, 훈련 시스템 등이 대부분 이 시기에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 국제무술연맹(IWUF)이 설립되면서 산타의 국제화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1991년에는 세계무술선수권대회에서 산타가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었고, 이후 1993년부터는 세계무술선수권대회 정식 종목으로 승격되었다. 1998년에는 아시안게임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국제적인 스포츠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1999년에는 산수에서 산타로 명칭을 변경하고 보호 장비를 간소화하는 등 경기 매력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공격성과 속도감을 강조하고 안전 문제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경기 규칙을 지속적으로 개선했다. 프로 리그 출범, 방송 중계 확대, 상업 스폰서 유치 등을 통해 산타는 점차 상업화되었고, 2002년에는 국제무술연합의 승인 하에 상하이에서 제1회 세계무술월드컵 산타 경기를 개최하여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무술이 특별 종목으로 시범 경기를 펼쳤고, 산타 역시 그 일부를 담당하여 전 세계에 그 매력을 알렸다. 비록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산타는 올림픽 무대를 통해 세계적인 스포츠로 도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1989년, 국가체육위원회로부터 정식 종목으로 인정받으면서 비로소 체계적인 스포츠 경기로 성립하였다. 또한 ‘무술산수경기규칙’ 발표 및 시행으로 산타는 공정하고 체계적인 스포츠 경기로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산타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다른 격투기와의 차별성

산타는 사회주의 중국에서 발전해온 스포츠인 만큼, 뚜렷한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장점:

다채로운 기술: 산타는 권법(拳法), 퇴법(腿法), 솔법(摔法), 나법(拿法)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하며, 공격과 방어, 근거리와 원거리를 넘나드는 입체적인 격투를 펼칠 수 있다. 이러한 다채로운 기술은 경기에서 다양한 변수를 만들어내고, 선수들에게 창의적인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실전적인 기술 체계: 산타는 실전 무술을 기반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자기 방어에 유용한 기술들이 많다. 복잡한 상황 대처 능력 향상 및 운동 능력 발달에 도움을 준다.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 현대 스포츠의 훈련 방식을 도입하여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구축했다. 선수들의 체력, 기술, 전술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용하고 있다.

경기장도 링이 아니라 뇌대擂台 형식을 빌어왔다. 소설 “수호지水滸傳”  擂台는 단순한 결투 장소를 넘어, 영웅들의 실력을 증명하고 명성을 얻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묘사한다. 예를 들어, 어떤 영웅이 뇌대擂台에서 다른 영웅을 꺾으면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지고, 양산박 내에서의 입지도 강화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후 중국 전통무술가들이 무술을 겨루던 무대를 뇌대擂台라고 하였다.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주최자가 무대를 설치하고 무술에 능한 사람이면 누구나 무대에 올라 겨룰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이를 “타뢰打擂”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주최자가 무대를 설치하고, 무술가가 신청 절차에 따라 무대에 올라 실력을 겨루어 승자가 무대에 남아 가장 뛰어난 무예 실력자를 가리는 것으로, 이를 “뇌대채擂台赛”라고 한다. “중앙국술관”에서 “뇌대채擂台赛”를 조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도전하는 형식을 지닌 서버이벌 예능에서도 뇌대채擂台赛라는 단어를 쓰기도 한다. 

단점:

경기 규칙의 잦은 변화: 산타는 비교적 짧은 역사 속에서 경기 규칙이 자주 변화해왔기 때문에, 선수들이 새로운 규칙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잦은 규칙 변화는 선수들의 기술 발전을 저해하고, 관중들의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보호 장비의 부족: 산타는 권투나 킥복싱에 비해 보호 장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부상 위험이 높다는 지적이 있다.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보호 장비 개발 및 착용 의무화를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대중적인 인지도 부족: 산타는 아직 권투, 무에타이, 킥복싱 등에 비해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미디어 노출 확대, 스타 선수 육성 등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과제이다.

다른 격투기와의 차별성:

권투: 권투는 오직 주먹만을 사용하여 공격하는 반면, 산타는 주먹, 발, 무릎, 팔꿈치 등 다양한 부위를 활용하여 공격할 수 있다. 또한, 산타는 메치기 기술을 허용하여 권투와 차별성을 둔다.

무에타이: 무에타이는 팔꿈치, 무릎 공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클린치 상황에서의 공격을 허용하는 반면, 산타는 팔꿈치 공격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클린치 상황에서의 공격을 제한한다.

킥복싱: 킥복싱은 주로 입식 타격 기술을 사용하며, 펀치와 킥을 중심으로 경기가 진행되는 반면, 산타는 입식 타격 기술뿐만 아니라 메치기 기술을 활용하여 다양한 공격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다.

중국 전통 무술과의 연관성:

산타는 태권도나 킥복싱처럼 새로운 격투기가 아니라 중국 전통 무술인 쿵푸의 실전 기술을 현대 스포츠에 맞게 재구성한 것이라지만 전통무술과의 연계성 부족하다. 전통무술을 응용한 차별적인 격투기 경기 창조라는 의도에서 시작했지만 산타 경기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되면서 전통무술과의 연계성이 부족하게 되었다. 산타 선수는 처음부터 산타 선수로 시작을 한다. 태극권이나 팔괘장 등 전통무술을 배우고 산타에 입문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태극권 같은 전통무술을 가르치기도 한다.

완전히 새로운 격투기인가?:

산타는 완전히 새로운 격투기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산타는 중국 전통 무술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서양 스포츠의 체계적인 훈련 방식, 과학적인 이론, 공정한 경기 규칙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기존의 무술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스포츠 형태로 진화해왔다. 따라서 산타는 전통 무술의 계승과 현대 스포츠의 융합이라는 측면에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산타는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중국 전통 무술의 요소를 기반으로 현대적으로 재구성된 격투기라고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산타는 쿵푸의 기술들을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격투 기술 체계를 구축하고 독자적인 경기 운영 방식을 확립함으로써 새로운 격투기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산타: 중국무술 기술이 현대 스포츠로?

산타는 쿵푸의 수많은 기술 중에서 실전적인 효용성이 높고, 현대 스포츠의 경기 규칙에 적합한 기술들을 선별적으로 수용했다. 대표적인 기술 요소는 다음과 같다.

권법(拳法): 쿵푸의 다양한 유파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기술들이 산타의 핵심을 이룬다. 하지만 맨손무술이 기본인 전통무술과는 달리 글러브를 착용하기 때문에 글러브라는 도구에 적응하게 되면서 권투나 무에타이의 펀치와 차이가 없게 되었다.

퇴법(腿法): 산타의 발차기 기술은 산타의 역동성을 더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앞차기, 돌려차기, 옆차기, 뒤차기 등 다양한 발차기 기술은 산타에서 공격뿐만 아니라 방어, 거리 조절 등 다방면으로 활용된다.

중국의 씨름인 솔각 기술이 많이 들어간 점은 산타의 차별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솔법(摔法): 산타에는 상대를 넘어뜨리거나 제압하는 다양한 메치기 기술이 존재한다. 이러한 메치기 기술들은 산타에서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공격 기회를 창출하는 데 사용된다.

나법(拿法): 쿵푸에는 관절을 꺾거나 조르는 등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 존재한다. 이러한 제압 기술들은 산타에서 제한적으로 허용되지만, 근거리 싸움에서 상대를 제압하거나 공격 기회를 만들어내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기술 도입 과정의 논쟁: 실전성 vs 스포츠성

전통무술의 다양한 기술을 산타에 도입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기술의 실전적인 효용성을 중시하는 입장과 스포츠적인 흥미를 중시하는 입장, 그리고 선수 안전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 충돌하면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타격 기술의 범위, 메치기 기술의 제한, 나법(제압 기술)의 허용 범위 등에 대한 논쟁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논쟁 과정에서 산타는 실전적인 효용성과 스포츠적인 흥미, 선수 안전이라는 세 가지 가치를 조화롭게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갔다. 또한 품세와 실전의 괴리감을 좁히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산타의 미래

격동의 시대를 넘어 세계 무대로 진출한 산타는 경기 규칙의 지속적인 개선, 엘리트 선수 육성 시스템 강화, 대중화 및 저변 확대 노력, 국제적인 협력 강화, 미디어 홍보 강화 등이 필요한 과제이다. 앞으로 산타는 전통무술과 서양 스포츠의 형식이 조화를 이룬 독창적인 격투기로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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