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팔괘장 완전정리
2023-06-10 22:24
무술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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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worldmartialarts.wiki/%ec%a4%91%ea%b5%ad%eb%ac%b4%ec%88%a0/?mod=document&uid=437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qawsedzaxscd&no=13744&page=2
위 링크는 디씨 중마갤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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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은 처음인데, 존대말을 써야 하는 규정때문에 불편하지만, 그동안 디씨와 인터넷, 본인이 경험한 인천팔괘장에 대한 이슈를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위 링크 참고하세요)
이 글에서는 누구를 폄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실명 언급되는 모든 분들은 훌륭한 무술가이며 지도자 자질이 충분하다는 가정 하에 글을 쓰고자 합니다.
인천팔괘장은 노수전 조사가 전한 팔괘장이며 정정화 류 팔괘장입니다. 노수전 조사는 팔괘장을 얼마 배우지 않았습니다. 주장 도는 법과 단수 3-4개가 초창기 제자들에게 전한 모습이라니 팔괘장 입문 후 6개월이 안 되는 초보자입니다.
노수전 조사는 오히려 한국에 와서 배운 무술의 양이 더 많을 것입니다. 노수전 조사 본인의 무공은 대단했다는 것이 제자들의 증언이니 중국 본토에서 배운 팔괘장은 초보 수준이지만 그 후 큰 노력을 하신 것 같습니다.
노수전 조사의 팔괘장 컨텐츠가 없다 보니 몇 개 안 되는 수의 단련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한중 수교 이전의 한국쿵후계의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나갈 진도가 없으니 공력 단련을 우선시하는 지도 방향으로 나갑니다.
본인의 콘텐츠는 부족하고 제자들은 키워야 하니, 인천팔괘장은 한국에 전해진 다른 중국무술과 혼합되기 시작합니다. 북파 중국무술, 당랑권, 소림권 등 잡다한 인천과 수도권에서 화교 그룹 내에서 전해지는 무술들과 노수전의 팔괘장이 합해집니다.
인천팔괘장은 짜장면입니다. 짜장면은 중국 본토에는 없지만 성공한 중국풍 요리입니다. 인천팔괘장도 팔괘장 비슷한 무엇이지만 팔괘장은 아니며 이것이 인천팔괘장의 정체성입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중국무술풍 한국무술) 인천팔괘장의 1세대 수련자 (노수전의 한국제자인 박복남과 전대성을 비롯해)들은 부족한 인천팔괘장을 완성하려고 큰 노력을 합니다. 대만에서 출간된 강용초의 '팔괘장'이라는 책 등을 참고하여 없던 투로를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인천팔괘장은 한국팔괘장입니다.
노수전 조사의 한국인 제자는 단 2명, 박복남과 전대성 관장입니다. 노수전 조사는 도장을 하지 않았지만 제자들 도장을 돌아다니면서 지도를 해서 몇 번 지도를 받고 자신은 노수전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럿 생깁니다. 박복남 관장은 미국으로 이주 후 크게 성공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팔괘장으로 가장 성공한 사람입니다.
노파 팔괘장은 인천팔괘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방계입니다. 인천팔괘장이란 타이틀을 달지 못하자 궁여지책으로 노파 팔괘장이란 희한한 작명을 하였습니다.
무슨 무슨 파 팔괘장이라고 했을 때(윤파, 정파 팔괘장) 동해천 조사의 팔괘장을 제대로 전수받고 자신의 개성으로 창편한 팔괘장을 말합니다. 노수전 조사는 초보급의 수련자이기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딴 팔괘장 문파를 만들수 없습니다. 따라서 지역명으로 인천팔괘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만 한국에 팔괘장을 전한 공로가 있기때문에 노수전이 창편한 팔괘장이 아니라 노수전이 전한 팔괘장이라는 뜻으로 쓸 수는 있습니다. 게다가 이상호 관장은 전대성의 제자입니다. 가장 초기 기록인 북경 동해천 묘소의 비문 뒤에도 그렇게 기재되어 있고 몇 번 지도받은 경력으로 노수전의 막내제자를 자처해서는 안됩니다. 김두한이 장군의 아들인 것은 자신이 자처한 것이고 전혀 사실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노파 팔괘장은 평범한 인천팔괘장이며 그것도 방계이고, 이상호 관장이 특별히 전수받은 것도 없는데 그렇게 보이도록 여론을 몰고가고 있는 것이 인천무술계에서 반감을 사고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상호 관장은 20대 초반에 체육관을 열 때 선배들로부터 팔괘장이란 타이틀을 걸지 말라고 해서 다른 이름의 체육관 이름을 걸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과거에 인정받지 못한 반발 심리로 계보에 목메는 것 같습니다.
한중수교 후 인천팔괘장 권사들은 중국으로 가서 팔괘장 교류를 시작하고 원류를 찾는데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안철균 관장과 필서신 관장이 대표적인데, 안 관장은 특유의 행동력과 호기심으로 팔괘장 제파와 교류하였고 필서신 관장은 화교라는 이점을 살려 교류하였습니다. 지금의 인천팔괘장은 1970년대의 인천팔괘장보다 많이 발전하고 확장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에 실명 언급되는 모든 분들은 훌륭한 무술가이며 지도자 자질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역사와 정체성 문제가 조금 얽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력으로는 일가를 이룬 분들이 실력 외적인 면에서 논란을 벌리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위 링크는 디씨 중마갤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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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은 처음인데, 존대말을 써야 하는 규정때문에 불편하지만, 그동안 디씨와 인터넷, 본인이 경험한 인천팔괘장에 대한 이슈를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위 링크 참고하세요)
이 글에서는 누구를 폄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실명 언급되는 모든 분들은 훌륭한 무술가이며 지도자 자질이 충분하다는 가정 하에 글을 쓰고자 합니다.
인천팔괘장은 노수전 조사가 전한 팔괘장이며 정정화 류 팔괘장입니다. 노수전 조사는 팔괘장을 얼마 배우지 않았습니다. 주장 도는 법과 단수 3-4개가 초창기 제자들에게 전한 모습이라니 팔괘장 입문 후 6개월이 안 되는 초보자입니다.
노수전 조사는 오히려 한국에 와서 배운 무술의 양이 더 많을 것입니다. 노수전 조사 본인의 무공은 대단했다는 것이 제자들의 증언이니 중국 본토에서 배운 팔괘장은 초보 수준이지만 그 후 큰 노력을 하신 것 같습니다.
노수전 조사의 팔괘장 컨텐츠가 없다 보니 몇 개 안 되는 수의 단련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한중 수교 이전의 한국쿵후계의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나갈 진도가 없으니 공력 단련을 우선시하는 지도 방향으로 나갑니다.
본인의 콘텐츠는 부족하고 제자들은 키워야 하니, 인천팔괘장은 한국에 전해진 다른 중국무술과 혼합되기 시작합니다. 북파 중국무술, 당랑권, 소림권 등 잡다한 인천과 수도권에서 화교 그룹 내에서 전해지는 무술들과 노수전의 팔괘장이 합해집니다.
인천팔괘장은 짜장면입니다. 짜장면은 중국 본토에는 없지만 성공한 중국풍 요리입니다. 인천팔괘장도 팔괘장 비슷한 무엇이지만 팔괘장은 아니며 이것이 인천팔괘장의 정체성입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중국무술풍 한국무술) 인천팔괘장의 1세대 수련자 (노수전의 한국제자인 박복남과 전대성을 비롯해)들은 부족한 인천팔괘장을 완성하려고 큰 노력을 합니다. 대만에서 출간된 강용초의 '팔괘장'이라는 책 등을 참고하여 없던 투로를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인천팔괘장은 한국팔괘장입니다.
노수전 조사의 한국인 제자는 단 2명, 박복남과 전대성 관장입니다. 노수전 조사는 도장을 하지 않았지만 제자들 도장을 돌아다니면서 지도를 해서 몇 번 지도를 받고 자신은 노수전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럿 생깁니다. 박복남 관장은 미국으로 이주 후 크게 성공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팔괘장으로 가장 성공한 사람입니다.
노파 팔괘장은 인천팔괘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방계입니다. 인천팔괘장이란 타이틀을 달지 못하자 궁여지책으로 노파 팔괘장이란 희한한 작명을 하였습니다.
무슨 무슨 파 팔괘장이라고 했을 때(윤파, 정파 팔괘장) 동해천 조사의 팔괘장을 제대로 전수받고 자신의 개성으로 창편한 팔괘장을 말합니다. 노수전 조사는 초보급의 수련자이기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딴 팔괘장 문파를 만들수 없습니다. 따라서 지역명으로 인천팔괘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만 한국에 팔괘장을 전한 공로가 있기때문에 노수전이 창편한 팔괘장이 아니라 노수전이 전한 팔괘장이라는 뜻으로 쓸 수는 있습니다. 게다가 이상호 관장은 전대성의 제자입니다. 가장 초기 기록인 북경 동해천 묘소의 비문 뒤에도 그렇게 기재되어 있고 몇 번 지도받은 경력으로 노수전의 막내제자를 자처해서는 안됩니다. 김두한이 장군의 아들인 것은 자신이 자처한 것이고 전혀 사실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노파 팔괘장은 평범한 인천팔괘장이며 그것도 방계이고, 이상호 관장이 특별히 전수받은 것도 없는데 그렇게 보이도록 여론을 몰고가고 있는 것이 인천무술계에서 반감을 사고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상호 관장은 20대 초반에 체육관을 열 때 선배들로부터 팔괘장이란 타이틀을 걸지 말라고 해서 다른 이름의 체육관 이름을 걸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과거에 인정받지 못한 반발 심리로 계보에 목메는 것 같습니다.
한중수교 후 인천팔괘장 권사들은 중국으로 가서 팔괘장 교류를 시작하고 원류를 찾는데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안철균 관장과 필서신 관장이 대표적인데, 안 관장은 특유의 행동력과 호기심으로 팔괘장 제파와 교류하였고 필서신 관장은 화교라는 이점을 살려 교류하였습니다. 지금의 인천팔괘장은 1970년대의 인천팔괘장보다 많이 발전하고 확장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에 실명 언급되는 모든 분들은 훌륭한 무술가이며 지도자 자질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역사와 정체성 문제가 조금 얽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력으로는 일가를 이룬 분들이 실력 외적인 면에서 논란을 벌리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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