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 청말기에 산동성 출신 무술가들이 만주로 이전한 것이 사실일까요?
2024-02-2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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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worldmartialarts.wiki/%ec%a4%91%ea%b5%ad%eb%ac%b4%ec%88%a0/?mod=document&uid=470
지금 중국의 동북3성지역인 만주는 청나라 시기 봉금정책으로 이주 금지와 허용이 반복되었습니다.
기본적인 정책은 금지였죠.
1873년 봉금령이 해제되자, 가장 많이 이주한 지역은 산동성 주민입니다.
배를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죠.
지금 동북3성 주민의 대다수가 산동성에서 이주한 조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산동성은 당랑권이 유명하니까 이주민 속에는 당랑권사도 있었을 것이고
그 비율만큼 당랑권이 전해졌으면 지금 동북3성에 당랑권사가 많아야 되는데
지금 현실은 봉금령 시기부터 전해지는 당랑권이 왜 없냐는 질문인 것으로 이해 됩니다.
동북3성에 당랑권 수련자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고 요녕성 대련에는 당랑권 전수맥이 있습니다.
임품장은 산동성 모평현(牟平縣)출신인데 기춘정(紀春亭)의 제자입니다.
(기춘정도 초창기 이주민은 아닌 것 같습니다. )
기춘정은 중국의 대련에서 당랑권을 교습하였고 임품장은 이곳에서 당랑권을 배웠습니다.
산동성에서 배를 타면 대련으로 가기때문에 산동성 주민이 첫번째 도착하는 항구가
대련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산동성 주민이 이주해와 화교가 되었고
당랑권과 팔괘장이 한국에 뿌리를 내렸는데 동북3성은 왜 그렇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있을 것입니다.
동북팔극권은 유명한데, 동북당랑권은 없으니까요.
물론 현대에는 대련의 경우처럼, 동북3성에도 당랑권 수련자도 있겠지만
중국정부의 '무술지향'으로 선정될만큼 의미있는 숫자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구가 필요한 주제라 확실치는 않지만 몇 가지 가설을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가설은,
1. 중국에서도 수 많은 전통무술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주로 20세기 초 중반 발전한 것이다.
- 당랑권 수련인구도 의미있는 비중으로 발전한 것이 1930년대 정도가 아닐까라는 것이 가설입니다.
중국무술은 1911년 중화민국 성립 후 민족주의와 서구 열강에 대한 반발로 발전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러니까 1911년 이전에 당랑권 수련자는 있었겠지만 아주 드물게 있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동북3성 이주민 속에는 당랑권사가 끼여있지 않았을 정도로 적었을 것이라는 가정입니다.
2. 한국의 화교이주는 1930년대 이후니까 이 시기에는 당랑권사의 수가 충분히 늘어나 한국의 화교 중에도
당랑권사가 포함되었을 것이다.
(한국 초대 화교중 당랑권사는 임풍장, 강경방 등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고 한국에서 제자들을 길러 수가 많아진 것이니까요.)
3. 팔괘장도 마찬가지로, 산동이나 하북성에서 만주로 이민이 시작된 1870년대는 팔괘장 수련자의 수가 적어
도장을 열고 제자를 키울 수 있는 조건을 갖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동북3성에 100년이 넘을 정도로 오래된 당랑권과 팔괘장 전수맥이 없는 이유는, 이주시기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가설 1: 산동성 주민이 만주로 1차 이주 시기인 1870년 대는 무술을 가르치고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가설 2: 산동성 주민이 한국으로 이주시기인 1930년대에는 중국본토에서 무술이 많이 발전해서 한국에 전해질 수 있었다.
위의 두 가지 가설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만주지역에는 봉금령 해제 이후, 많은 이주가 있었고
1940년대 만주국 인구는 4천 3백만에 달했다고 하니, 이 시기 중국 전역의 모든 무술들은 만주에도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기본적인 정책은 금지였죠.
1873년 봉금령이 해제되자, 가장 많이 이주한 지역은 산동성 주민입니다.
배를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죠.
지금 동북3성 주민의 대다수가 산동성에서 이주한 조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산동성은 당랑권이 유명하니까 이주민 속에는 당랑권사도 있었을 것이고
그 비율만큼 당랑권이 전해졌으면 지금 동북3성에 당랑권사가 많아야 되는데
지금 현실은 봉금령 시기부터 전해지는 당랑권이 왜 없냐는 질문인 것으로 이해 됩니다.
동북3성에 당랑권 수련자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고 요녕성 대련에는 당랑권 전수맥이 있습니다.
임품장은 산동성 모평현(牟平縣)출신인데 기춘정(紀春亭)의 제자입니다.
(기춘정도 초창기 이주민은 아닌 것 같습니다. )
기춘정은 중국의 대련에서 당랑권을 교습하였고 임품장은 이곳에서 당랑권을 배웠습니다.
산동성에서 배를 타면 대련으로 가기때문에 산동성 주민이 첫번째 도착하는 항구가
대련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산동성 주민이 이주해와 화교가 되었고
당랑권과 팔괘장이 한국에 뿌리를 내렸는데 동북3성은 왜 그렇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있을 것입니다.
동북팔극권은 유명한데, 동북당랑권은 없으니까요.
물론 현대에는 대련의 경우처럼, 동북3성에도 당랑권 수련자도 있겠지만
중국정부의 '무술지향'으로 선정될만큼 의미있는 숫자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구가 필요한 주제라 확실치는 않지만 몇 가지 가설을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가설은,
1. 중국에서도 수 많은 전통무술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주로 20세기 초 중반 발전한 것이다.
- 당랑권 수련인구도 의미있는 비중으로 발전한 것이 1930년대 정도가 아닐까라는 것이 가설입니다.
중국무술은 1911년 중화민국 성립 후 민족주의와 서구 열강에 대한 반발로 발전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러니까 1911년 이전에 당랑권 수련자는 있었겠지만 아주 드물게 있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동북3성 이주민 속에는 당랑권사가 끼여있지 않았을 정도로 적었을 것이라는 가정입니다.
2. 한국의 화교이주는 1930년대 이후니까 이 시기에는 당랑권사의 수가 충분히 늘어나 한국의 화교 중에도
당랑권사가 포함되었을 것이다.
(한국 초대 화교중 당랑권사는 임풍장, 강경방 등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고 한국에서 제자들을 길러 수가 많아진 것이니까요.)
3. 팔괘장도 마찬가지로, 산동이나 하북성에서 만주로 이민이 시작된 1870년대는 팔괘장 수련자의 수가 적어
도장을 열고 제자를 키울 수 있는 조건을 갖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동북3성에 100년이 넘을 정도로 오래된 당랑권과 팔괘장 전수맥이 없는 이유는, 이주시기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가설 1: 산동성 주민이 만주로 1차 이주 시기인 1870년 대는 무술을 가르치고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가설 2: 산동성 주민이 한국으로 이주시기인 1930년대에는 중국본토에서 무술이 많이 발전해서 한국에 전해질 수 있었다.
위의 두 가지 가설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만주지역에는 봉금령 해제 이후, 많은 이주가 있었고
1940년대 만주국 인구는 4천 3백만에 달했다고 하니, 이 시기 중국 전역의 모든 무술들은 만주에도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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